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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편지]-아모스 개론(4/4)

현명인목사 2017. 10. 15. 09:15

[하나님의 편지]-아모스 개론(4/4)

 

To.사랑하는 나의 아들 딸에게...

 

#아모스개론(4/4)

 

아모스서는 이스라엘과 유다가 동시에 안정과 번영을 누리던 여로보암 2세와 웃시야 통치 중반기 이후 시기인 B.C. 760년 경,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약 16km가량 떨어진 드고아 출신의 선지자, '아모스'에 의해 기록되었습니다. 이는 1인칭의 문체에서도 명확히 드러납니다. 그는 이사야처럼 왕궁에 속하지도 않았고, 예레미야와 같은 제사장도 아닌 평민 출신으로서, 양떼를 치고 뽕나무를 재배하는 등의 생계를 유지하던 중에 하나님께 소명을 받게 된 것입니다.

 

아모스는 유다 출신이었음에도 벧엘로 이주하여 주로 이스라엘에 대하여 예언하였습니다(7:13). 그러나 여로보암 2세가 거주하던 우상의 중심지 벧엘에서의 아모스 설교는 그 곳 사람들로 하여금 반발을 일으키게 했습니다. 율법과 역사에 대한 뛰어난 통찰력을 지닌 아모스는 결국 유다로 다시 돌아와 하나님이 주신 계시를 예언서로 남기기 시작했습니다.

 

1:1과 7:10-13을 통해 아모스가 유다의 웃시야 왕과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 때인 8세기 중엽에 활동한 선지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대는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버금가는 평화와 번영의 시기였습니다.

 

유다왕 웃시야는 B.C. 791-740년까지 50여 년 간을 다스렸습니다. 웃시야는 유다의 적을 물리치고 예루살렘의 성벽을 튼튼하게 증축했습니다. 그의 치세 기간 동안 유다는 번성했고 한 때 선지자 아모스의 영향으로 역적으로 견고하기까지 했습니다.

 

여러보암의 통치하에 들어간 이스라엘은 건국 이래 제2의 전성기라 할 정도로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인 부흥을 이루어 갔습니다. 그러나 번영에 취해 살던 이스라엘은 급기야 하나님을 잊기 시작했으며, 종교적이고 도덕적인 부패에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에게는 겨울 궁과 여름 궁, 상아 궁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풍조는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을 오염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또한 가난한 자에 대한 착취 및 빈부격차 현상은 날이 갈 수록 심해졌으며, 성적 타락은 입에 담기도 어려울 정도로 심해졌습니다. 아모스는 이러한 상황에서 <타락에서 돌이켜 회개하라>는 하나님의 심판을 단호하게 선포했습니다.

 

본서에서도 나오는 '여호와의 날'은 이사야서 13장, 에스겔서 13장, 요엘서 1장-3장, 오바댜 1장, 스바냐 1장 등에서 발견되므로 아모스만의 사상이 아닌, 이전부터 선포 되었던 사상을 하나님의 계시에 의하여 자신의 예언서에 기록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여호와 날의 개념은, 죄인에게는 '멸망의 날'이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들에게는 '구원의 날'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중심의 바른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복음의 본질에 대한 정의와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정체성이 수반 되어야 합니다. 아모스 시대는 인류 역사상 유래 없는 번영과 발전을 이루었지만 하나님에 대한 감사는 사라지고 방탕과 부정부패만 만연되어 갔습니다. 아모스는 이에 대하여 종말이 올 것을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다윗의 시대처럼 회복 될 것도 선포함으로써 소망과 격려를 함게 전했습니다. 이와 관련한 주제를 몇 가지로 나누어 보면,

 

(1)하나님의 절대적 주권 : 아모스는 민족의 이동과(9:7), 질서 있게 돌아가는 자연 현상들(4:13, 5:8)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하여 설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 속에서도 하나님을 경배하거나 거절하거나 하는 등의 자유가 인간에게 있음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2)하나님의 공의적인 심판 : 참 신앙은 반드시 사회적이며 종교적인 정의가 수반 되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습니다(5:24). 그렇지 못 할 경우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불가피하게 나타나며, 하나님에 대한 순종과 정의 실현을 자율적으로 하지 않을 경우, 하나님은 타율적인 제재를 가하여서라도 그의 백성을 죄악에서 돌아키도록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신 분이지만 동시에 공의로운 분이시므로 죄를 방치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상숭배와 형식적인 제사 등의 종교적 범죄와 및 압제와 기만과 탐욕 등의 사회적 범죄 등으로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파기하였을때, 하나님의 공의는 심판의 수행으로 나타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3)이스라엘의 왜곡 된 선민사상 :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이 역사적으로 선택받은 선민임을 확신하였습니다(3:2) 그래서 자신들이 아무리 그릇된 길로 가더라도 하나님은 결코 자기들을 버리지 않으실거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에 아모스는 그들 사이에 만연된 이 잘 못된 선택의 개념을 통령하게 비난하면서, 선택 된 백성이라는 사실 한 가지 만으로는 하나님의 축복이 저절로 보장 되지 않으며 하나님 자녀로서의 순종과 하나님의 연약을 지키는 삶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출19:5). 이에 아모스는 그들에게 잘 못된 선민의식과 특권에 대한 책임적 이행을 촉구하였습니다.

 

(4)아모스는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부각시키지만 심판으로 파멸 된 이후의 회복을 그 이면에 제시합니다. 아브라함과 다윗 등을 통해 맺으신 구속의 언약을 성취하시기 위하여 메시아를 이 땅에 보내신다는 내용입니다(9:11-15). 이 날이 바로 '여호와의 날'입니다. 메시아의 통치하에 유대인과 모든 이방인이 하나가 되는 날입니다.

 

여호와의 선지자가 기존의 종교 지도자와 갈등을 일으키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사두개인과 유대 제사장들로부터 심한 반대를 받으셨고 결국은 십자가에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아모스에게 있어서 종교가 공의와 의로움으로 인도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전혀 무가치한 것이었습니다. 이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정의를 물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같이!"라는 주제입니다.

 

결론적으로, 아모스서의 기록 목적은 하나님의 무서운 경고와 심판을 부각시키려 함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가 궁극적으로 구원을 얻게 된다는 소망의 제시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이 소망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이자 존재하는 목적의 근원이 되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Maranatha!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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