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시리즈 [관념적 복음인가, 능력의 복음인가]-5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데살로니가전서 1:5)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린도후서 5:17)
[관념적 복음인가, 능력의 복음인가]-5
생명의 기초인 복음의 능력은 변하지 않습니다. 과거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동일한 섭리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옛 아담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하지만 인간 생명에 관하여 아무런 표면적 변화도 일으키지 못 한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단지 피조물로서의 인생에 대한 근본적 변화의 범주를 넘어서지 못 한다는 뜻입니다.
액체 상태의 물이 0도 이하로 내려가면 고체 상태의 얼음이 됩니다. 온도가 높인질수록 기체 상태인 수증기로 변합니다. 수증기가 모여 온도가 내려가면 또 다시 액체 상태인 물로 돌아옵니다. 액체와 기체와 고체, 존재적 상태 자체는 다르지만 물은 물입니다.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변질 된 복음에서 뿌리를 내린 무능한 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을 피상적 변화와 관념 속으로는 끌어들일지는 모르지만 그 인간을 과거의 인간 그대로 방치 해 둘 따름입니다. 여기에 관념적 종교의 함정이 있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변화는 일시적이며 외형적일 뿐입니다. 옛 아담이 가진 본질 그대로 입니다. 여기까지가 한계입니다.
불신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진리가 결핍 되어 무능력한 복음을 받은 자가 있습니다.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이 행하는 거의 모든 활동의 배후에는 동일한 동기가 깔려 있습니다. 그들의 삶 밑바닥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 저주스러운 자아(ego)입니다.
이 두 부류의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종교적인 사람은 자기의 악을 더 멋지게 위장하는 기술을 터득해 놓았다는 것입니다. 관념적 종교인의 죄는 그가 종교를 취하기 이전의 죄보다 세련되어졌거나 또는 악질의 농도가 약해져 보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인간 자체는 하나님의 눈으로 보실 때 조금도 나아진 게 없습니다. 어쩌면 더 악하게 보실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은 위선과 가식을 증오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의 중심에 있는 이기주의는 고장난 브레이크의 자동차처럼 멈추지 않습니다. 실제 자신의 이기주의적인 충동을 다른 방향으로 틀어보기 위해 나름대로의 노력도 해보겠지만 결국 심중에 박힌 자아에서 뿜어져 나오는 독은 바퀴벌레 같은 강한 생명력으로 존재하며 그를 조종합니다. 결과적으로 그는 관념적 종교의 희생물로 살다가 영원한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진리가 왜곡 되거나 아예 결핍 된, 그런 능력 없는 말씀을 받아들인 사람이라도 자기 주변의 죄악 된 찌꺼기들을 말끔히 청소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청소한 곳은 가시덤불입니다. 청소 뒤 날카로운 가시는 더욱 도드라질 뿐입니다. 그 곳에서는 새 생명의 열매를 낼 수 없을 뿐만아니라 다른 생명들의 성장까지도 방해하고 죽입니다.
관념적 종교인들은 가시덤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을 살리는 사명자의 자리에 버젓이 앉아 소위 교회 지도자 급에 오르기도 합니다. 오르려하는 그도 문제겠지만 가시덤불인 것을 보지 못 하는 영적 소경자들의 문제도 한 몫 단단히 합니다. 그의 영향력은 신앙을 신념으로 변질시킵니다. 생명길에 선 자들과 갈림길에 선 자들을 사망의 길로 끌고 갑니다. 그는 저주의 통로요 사망의 샛길입니다.
생명의 기초가 되는 복음이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선포 되어질때 이를 받아들인 옛 아담은 예수 그리스도로를 향한 믿음의 반석 위에서 생명의 기초를 쌓아 가게 됩니다. 그가 근본시 여기던 자아도 영적 동기와 목적을 근간으로 삼는 자로 새롭게 변화되어, 일반적 피조물의 존재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영적 실존자가 됩니다. 이 후로는 외적 가치를 멀리하고 외모의 기만에 미혹되지 않으므로. 불가시적 영원 세계를 더욱 신뢰하고 사랑하게 됩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저 위에서 제시한 관념적 종교에 대하여 동의 한다는 생각을 할 것입니다. 여기에 빠져보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으며, 교리와 실천 사이의 간격이 가공 할 정도로 멀기 때문입니다. 진리에 입각한 복음의 능력이 결여 된 설교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이를 분별하지 못 하고 받아들이는 교인들도 큰 책임이 있습니다. 그래서 진리가 주장하는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바로 이 것이 관념적 종교의 비극입니다.
진리의 복음은 위로부터 나서 새로운 세계의 존재가 되는 새 생명과 결부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복음은 관념이 아닌 능력입니다.
Maranatha!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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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인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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