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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예수를 모르오!]

Adullam 2018. 11. 25. 06:53

 

"그러나 베드로가 저주하며 맹세하되 나는 너희가 말하는 이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닭이 곧 두 번째 울더라 이에 베드로가 예수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 곧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기억 되어 그 일을 생각하고 울었더라"(마가복음 14:71-72)

 

[나는 예수를 모르오!]

 

모세 때 세워진 70인 장로회는 모세에게 임했던 하나님의 영이 70인 각자에게 임하여, 그들로 하여금 맡겨진 소임을 성실히 감당케 하기 위한 목적으로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세워졌습니다.

 

70인 장로회는 순수 이스라엘 혈통으로 구성 된 유대인 최고 재판소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권력을 손에 쥐고 모든 재판을 관할하기 시작하면서 진리를 판단하려는 오만의 싹이 자라기 시작했으며, 교만의 벌레가 그들의 심장을 파먹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신약에 등장하는 산헤드린 공회는 예수님을 죽이는 일에 앞장 서는 '사탄의 회'가 되고말았습니다.

 

예루살렘의 공기가 여전히 쌀쌀했을 유월절, 어둠이 짙게 깔린 감람산 어딘가에 베드로를 비롯한 예수님의 제자들은, 행여 자기들의 머리카락이라도 보일라 그 짙은 어둠을 덮고 큰 덩치를 가리우느라 급급했을 터입니다. 어쩌면 절망감으로 두려워하고 두려움으로 낙망한 자신들의 일그러진 표정을 가리려 했는지도 모릅니다.

 

그 시각 예수님은 유대 산헤드린의 포로가 되어 로마의 통제하에서 꼼짝 못하는 신세가 되어 있었습니다. 숨어 있던 제자들 중 용기를 낸 베드로는 하스모니안 궁전 내에 있는 대제사장의 저택까지 줄곧 따라갔고 더 용기를 내어 재판정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초조해 하면서 불을 쬐던 베드로는 어느새 예수님을 체포한 무리들과 섞여 있었습니다. 눈에 띄지 않도록 철저히 위장했지만 조금 지나지 않아 한 여종에 의해 들통나게 됩니다. 예수의 제자였다고 다그치는 그녀의 말에 잔뜩 겁을 집어먹은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하고 거듭 부인했습니다. 그리고 급기야는 강한 부정과 함께 예수님을 저주했습니다.

 

그 때 마치, 닭이 예수님을 부인하는 베드로의 세 번째 대답을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힘차게 두 번을 울어댑니다.

 

"...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 베드로의 통곡이 시작되었습니다.

 

주님에 대한 배반은 표정과 행동으로도 표출됩니다. 그의 얼굴이 나는 예수님을 부끄러워 한다고 말하고 있으며, 그의 행동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있습니다. 이웃의 절박한 요구를 외면함도, 형제 자매들의 손길을 뿌리침도, 세상을 향하여 '나는 예수를 모르오,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오' 라고 소리치는 것과 같습니다.

 

세상 곳곳에 또아리를 튼 마귀문화에 취해 세상과의 보폭을 줄여야 한다고 말함도 성도의 본질에서 벗어난 배도입니다.

 

'배신'이 모든 인간들이 갖고 있는 간교함과 간사함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그리스도인 또한 이 부분을 갖고 있다는 게 됩니다. 그렇다면 언제든 주님을 '배도'할 수 있는 인자가 몸 속에 흐르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 되는 바, 잠시라도 복음의 길을 벗어나면 그 잠시라는 찰나를 통해 복음의 변질과 배도의 바이러스가 침투 된다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음으로 귀결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다음입니다. 이에 대해 C. S. 루이스는 <회심에 대한 모든 이야기는 축복 받은 패배의 이야기임에 틀림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나 자신은 어떨까요? 여전히 남의 이야기로만 보여집니까?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주님과 관계 있는 성숙한 성도인가?', 아니면 '나는 성숙하다고 믿고 있는 교회와 관련된 교인인가?' 성도라 하더라도 주님에 대한 배반은 일상 다반사에서 일어납니다. 교인은 두 말 할 것도 없습니다. 이들 대부분은 의식과 무의식을 오가며 자신의 안위를 먼저 살피고, 사상과 철학, 젠더 이데올로기에 취해 복음을 왜곡합니다.

 

참 성도는 어느 상황에 맞딱드리고, 어느 환경에 처하고, 어느 자리에 서고, 어느 누구와 함께 있더라도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의 중심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늘 긴장감을 유지하는 하나님의 사람을 말합니다. 영혼의 매무새를 단정히 하기 위해 말씀의 거울 앞에 자신의 모습을 늘 돌아보는 거룩한 사람을 말합니다.

 

예루살렘의 공기가 여전히 쌀쌀했을 유월절, 어둠이 짙게 깔린 하스모니안 궁전 내에 있는 대제사장의 저택 재판정에 유대 산헤드린의 포로가 되어 로마의 통제하에서 꼼짝 못하는 신세가 되어 있는 예수님을 바라보는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주님의 제자임을 인정하고 주님과 함께 서겠습니까?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하시겠습니까?

 

당신의 믿음이 이 질문의 답이며, 그 답이 당신을 이끌어 갈 것입니다.

 

Maranatha!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아둘람복음공동체?SNS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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