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량없는 은혜와 긍휼]-1/3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에베소서 1:7)
[한량없는 은혜와 긍휼]-1/3
성경은 많은 죄와 큰 죄에 대한 주님의 대응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많은 죄란 죄의 횟수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태생적 죄인이며 본질적 죄인이기에 살아 있는 동안 이런 저런 죄를 끊임 없이 범합니다. 살아있는 시간이 길수록 죄도 덕지덕지 쌓입니다. 곧 죄의 누적량은 연수에 비례합니다.
예수 믿고 변화된 사람들도 또 또 또 죄를 짓고 또 짓습니다. 그럴 때마다 또 또 또 회개하고 또 회개합니다. 그러다보면 영적 회의에 빠지기도 합니다.
"예수 믿고 십자가의 보혈로 죄 씻음 받았는데... 아렇게 나는 여전히 크고 작은 죄들을 지으며 살아 가고 있으니... 난 아마도 천국 가기는 틀렸을 거야. 주님이 나를 보고 얼마나 실망을 하실까? 나라도 나같은 인간 용서 안하지... 난 구제 불능이야..." 이렇게 한숨을 토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시고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랑의 개념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요일 4:8-10).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주님은 죄인을 불러 회개시켜 구원하시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 사랑의 농도는 성경의 핵심 주제인 요한복음 3장 16절에 있습니다. 거룩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사람의 형상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죄 많은 인류를 위하여 그 끔찍한 저주의 십자가에 처형 된 사실을 진한 농도로 함축시킨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하나님의 우리를 향하신 사랑의 농도를 가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십자가 사건은 20세기 전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엄청난 사랑을 실감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 사랑을 리얼하게, 디테일을 더하여 우리에게 보여준 내용이 있습니다(마18:21-35). 많은 죄와 큰 죄도 주님이 흔적조차 남지 않게 말끔히 용서하신다는 실감나는 예화입니다.
제1화는, 잘못한 사람을 일곱 번 용서하면 충분하지 않겠느냐는 베드로의 질문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의 랍비들은 세 번 용서를 가르쳤습니다. 그들의 율법 해석이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일곱 번 용서하면 충분하지 않겠냐고 질문한 베드로에게는 정말 일곱 번 정도는 용서 해줄 수 있는 마음이 있었던 것일까요? 아니면 네가 그런 마음을 품었으니 참 대견하다는 칭찬을 주님으로부터 들을 줄 알았던 것일까요?
필자는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두세 번 용서해주면 더 이상 용서가 안 됩니다. 비단 필자 뿐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허다한 사람들이 그러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기절초풍할 답을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마18:22)
그런데 그렇게는 안 됩니다. 그렇다고 주님을 포기 할 수도 없습니다.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되는 이것이 우리의 입장입니다. 그러나 낙심할 것이 없습니다. 주님은 이미 우리가 그렇게 못한다는 사실을 우리 자신들보다 더 잘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럼 우리를 기죽이려고 그런 말도 안 되는 답을 주신 것일까요? 그것도 아닙니다. 그럼 대체 무엇일까요?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하라" 하신그 답에는 주님의 한량 없는 은혜와 긍휼이 충분하게 담겨있음을 우리로 하여금 깨달아 알게하려 하심이었습니다.
제2화는, 큰 죄를 다루는데 누군가의 질문에 의해서가 아니라 주님 자신이 덧붙여 그 한량 없는 은혜와 긍휼을 확인시켜 주시려는 의도가 있음이 자명합니다. 큰 죄의 규모는 도대체 어느 정도일까요?
나치 히틀러가 유대인 600만 명을 가스실에서 살해한 죄도, 60년대 후반에 강원도 인제에서 육군 상병 고재봉이가 잠자고 있던 대대장 일가족 5명을 도끼로 내리쳐 살해한 죄도, 2001년 911테러로 3천명 내외의 희생자를 낸 무역센터 테러범죄도 큰 죄에 다름 아닙니다. 이렇듯 인간의 범죄는 문명의 발달로 지능화 되고 과학화 되어 가고 있습니다. 가증한 사타닉 오컬트가 거리거리에 널려 있으며, 아이들은 물론이고 어른들의 손에도 각종 게임을 통한 가상의 죽고 죽이는 살인과 집단살상이 더욱 흉포하고 가증히 나타나고 있습니다(2/3계속).
Maranatha!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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