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 하나님 생각]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이사야 55:8-9)
[내 생각, 하나님 생각]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사랑을 모르는 사람처럼 살아갑니다.기도하자고 말은 하면서 기도하지 않습니다. 복음을 전하자고 하면서 복음을 부끄러워 합니다. 깨어 있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늘 어둠 속입니다.
하나님 말고도 신경 쓸 것이 많습니다. 복음 말고도 가진 것이 많습니다. 기도 말고도 해야 할 일이 쌓여 있습니다. 성경을 읽지만 성경의 경이로운, 그 신비한 그 많은 기적들은 성경 시대에나 있었던 일로 취부합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히13:8)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믿지 않습니다.
사람은 저마다의 기준을 갖고 있습니다. 자신이 나고 자란 가정환경, 성장 배경, 학력과 업적, 재산, 외모, 직업, 지식, 경험 등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자신만의 신앙을 절대시하고 이를 잣대삼아 사람과 세상을 바라봅니다. 가진 것도 많고, 지키고 싶은 것도 많기 때문이요, 최소한의 자존심이며, 그에 대한 보상심리 때문입니다.
누구나 다 있습니다. 부인해서는 안 됩니다. 결혼 적령기에 들어선 믿음 좋은 처녀 총각이라도, 오직 예수만 외치는 믿음 좋은 신학생이라도, 이혼하여 혼자사는 목사 장로라도, 시골 노총각이라도, 삼심 중반이 되도록 취직 한 번 해보지 못 한 백수라도, 두번 세번 이혼한 그 누구라도 자기만의 선택 기준이 있습니다.
초혼 상대자도, 재혼 상대자도, 오직 하나님의 뜻에 맞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과 믿음의 가정을 이루겠다고 기도하면서 막상 자기 눈에 차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결론을 미리 내버린 뒤 자기 최면에 빠져드는 자기 구제식 기도를 합니다. 내가 해봐서 압니다. 그러나 필자 한 사람 뿐이겠습니까? 확신하건대 범인(凡人)이 그러합니다.
이런 찬양이 있습니다. <사람을 보며 세상을 볼 때 만족함이 없었네 나의 하나님 한 분 만으로 나는 만족하겠네> 우리는 이렇게 찬양하고, <하나님 한 분 만이 아닌 사람과 세상을 통해 만족함을 채워가는 삶>을 살아갑니다. 주님 한 분만으로 충분하다 말하고, 주님 한 분만으로 부족하게 살아갑니다.
자기의 생각이 하나님의 생각을 앞섭니다. 자신의 뜻이 하나님의 뜻을 앞섭니다. 교회에서 영적 지도자인 목사라 하더라도 선택권 전혀 없는 주님의 작고 어린 종일 뿐입니다. 소위 세상에서 잘나가는 상위계층의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것(롬1:6)이요 곧 종일 뿐입니다. 한 마디로 선택권 없다는 얘깁니다. 종의 생각은 중요치 않습니다. 주인의 생각과 결정에 오직 순종하여 두려움과 떨림으로 행하여야 합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와 비교해 보면 수천년이 지난 지금 이 시대는 표현 못 하리만치 발달 된 첨단 과학과 우주 문명시대를 달리고 있으며, 동식물 복제는 물론이고, 인공지능 로봇을 통한 인간 노동력 대체와, 복잡한 수학 공식 풀이 및 바둑과 같은 보이지 않는 심리적 경쟁에서까지 사람을 훨씬 능가하는 수준이라고 말하면서, 주님께서도 오늘날의 시대적 상황을 이해해 주셔야 한다고 배설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자기 생각이 앞서도 너무 앞섰습니다.
젊은 사람들도 잠시만 한눈팔면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낙오자가 될 수 있습니다. 조합된 생소한 신조어 등 조금만 방심해도 뒤떨어집니다. 그래서 일까요? 버스에도, 지하철에도, 거리에도 스마트폰을 들여다 보느라 모두가 겸손히? 고개를 숙이고 있습니다. 사람을 위한 스마트폰인지, 스마트폰을 위해 사람이 존재하는지 모르겠습니다.
2016년, 바둑 이세돌 프로 9단과 알파고의 대결로 4차 산업혁명은 아주 가까운 미래, 짧게는 앞으로 30여 년이면 우리의 생활이 기계화된 인공지능과의 일상적 동거가 될 것이라는 예측이 설득력 있었습니다. 그 대국이 치열하던 그 해 3월 12일자 조선일보 1면 톱기사의 톱 타이틀이 심한 전율을 느끼게 하였습니다.
<인공지능 가라사대...>
인공지능 가라사대라니... 끔찍한 충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가라사대의 여운이 오래 남았습니다.
필자는 매우 복잡한 심경으로 어제를 보냈습니다. 몸이 아파 오랜시간 누워 있다가 옷을 주섬주섬 챙겨입고 잠시 걸었습니다. 거리의 사람들이 육신의 옷을 벗은 모습처럼 보였습니다. 하나님의 심판대에서 받게 될 심판의 결과가 어떠할지를 이 많은 사람들이 단 한 번이라도 생각해봤을까? 영혼의 거취 문제를 놓고 단 한 번이라도 애통해하며 기도는 해봤을까? 걷고 있는 모든 공간이 회색빛으로 보였습니다. 아마도 열이나서 였을겁니다.
냉커피 안에서 녹아드는 얼음 알갱이처럼 말씀 안에 녹아드는 이 땅의 모든 교회가 되기를 소망하며, 모든 선택의 기준이 우리와 다른 하나님의 생각으로 말미암게 되길 소망합니다.
Maranatha!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계원대학교회.아둘람복음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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