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편지]-고린도후서(2/7)
[하나님의 편지]-고린도후서(2/7)
To.사랑하는 나의 아들 딸에게...
내 종 바울은 진정한 변화를 추구했다. 그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갖고 있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어하는 깊은 갈망을 그들로 하여금 깨닫게 해주었고, 그 갈망이 흘러 목적한 곳에 다다를 수 있도록, 마르지 않는 생명수같은 힘을 공급해 주기 위해 목숨바쳐 헌신했다. 여기서 네가 먼저 알아야 할 것은, 바울이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을 굳건히 붙들고 헌신 할 수 있도록 내가 그의 마음에 참된 소망을 먼저 심어 주었다는 것이다.
내가 바울에게 먼저 심어준 그 소망이 어떤 것이었는지 궁금하다면 C.S. 루이스가 했던 말을 잘 읽고 생각해 보거라.
"기독교는 사람들에게 회개를 요구하고 용서를 약속한다. 그러나 자기 자신이 죄인임을 모르거나 또는 용서 받을 만한 죄가 없다고 우겨대는 사람에게는, 그 어떤 말도 전해 줄 수 없다. 세상에는 세상의 법이 있고, 그 법 뒤에는 그 법을 집행하는 능력이 있다. 만일 자신이 그 법을 어기게 된다면, 자신이 법을 집행할 수 있는 능력에 반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기독교에서 전하는 말이 그의 귀에 들려 오기 시작한다."
너는 인본주의 사상으로 가득한 세상 속에서 살고 있다. 그것은 너로 하여금, 상처가(남들이 너를 다루는 방식이) 이기심보다(네가 남을 다루는 방식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고 믿게 만들 뿐만 아니라, 상처의 치유를 위해서는 좀 더 좋은 사람들과 어울려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것들은 나의 뜻이 아니다. 나의 뜻은 이기적인 자를 용서해 주는 마음과, 자기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가는 것이다.
바울은 지난날의 상처든, 사역하는 동안 받은 상처든, 어떤 상처에도 관계 없이 그 상처가 절대절명의 큰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 아들이 바울을 직접 대면하여 말했을 때, 그에게 어떤 위로의 말도 하지 않은 것이 이를 증명한다.
그러나 내 아들은, 바울의 죄만큼은 드러냈다. 바울 그가 지난날 신앙적 양심의 가책을 무시하면서 내 이름을 이용했던 것과, 자신이 남보다 우월한 능력이 있으며, 또한 중요한 인물이라고 생각해왔던 자기 중심적인 고집 등을 보게 해 주었다(행26:14). 그 결과 바울은 나를 위해서가 아닌, 나를 거스르며 살아 왔다는 걸 깨닫게 되었고 그 때 비로소 내 아들의 말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일어나서, 발을 딛고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목적은, 너를 일꾼으로 삼아, 네가 나를 본 것과 내가 장차 네게 보여 줄 일의 증인이 되게 하려는 것이다"(행26:16).
나는 바울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었고, 그에게 사명을 부여해줬다. 이 후 바울은 만나는 상대가 누구이든 관계 없이, 내가 주는 새로운 삶의 길이요, 급진적인 사랑의 길 보다 못 한 삶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그가 살아가고있는 삶이 전부인양 만족하며 사는 사람들을 보면, 애통해 하며 안타까워 했다. 그렇게 바울은 공동체 속에서 참 된 삶을 얻기 위해, 자기를 부인하고 내 아들의 복음, 곧 나의 복음을 전하는 좁은 길을 갈망했던 것이다.
너도 바울이 깨달은 것 처럼 깨달아야 하며, 바울이 복음전파를 갈망했던 것처럼 갈망해야 한다. 그래야만 내가 바울에게 심어 준 천국이 네 마음에도 심기워지게 될 것이다.
(내일, 3/7계속)
Maranat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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