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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7:1-6 [비판은 자기모순(自己矛盾)이다]-1
Adullam
2022. 1. 25. 08:35
2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3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5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6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비판은 자기모순(自己矛盾)이다]-1
산상수훈의 마태복음 5장과 6장은 성도들의 생활원리이고, 7장은 성도들의 실천규범입니다. 예수님은 실천규범을 “비판하지 말라”로 시작하셨습니다.
소경이 단청 구경한다는 뜻의 맹완단청(盲玩丹靑) 이라는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멋 모르고 구경하는 것을 비유하거나, 사물을 봐도 제대로 사리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또한 상대의 겉모습을 보고, 보이는 대로 급하게 판단하거나, 말 몇 마디로 듣고 상대를 쉽사리 판단하는 경우에 맞는 속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ㅡ 주일 오전 제법 큰 교회 앞에, 거지 복장을 한 어느 중년이 구걸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교회로 들어가는 교인들 중 그 거지에게 동전 한 닢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예배가 시작 될 즈음, 그 거지는 조용히 성전으로 들어가 빈자리를 찾아 앉았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그를 피했고, 잠시 후, 명찰을 단 부목사 두 사람이 그 거지에게 다가가 오늘 교회에 큰 행사가 있으니 나가달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거지는 나도 예배 드리러 왔다고 말했지만 반 강제로 끌려 나가다시피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그날은 청빙 된 목사님의 공식적인 첫 주일이었습니다. 원로목사님이 청빙된 목사님을 소개하겠다고 하자, 그 거지가 문을 열고 다시 들어오더니 강대상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교인들이 만류하려고 하자 원로목사님은 저분이 신임목사님이라고 말했습니다.
거지 복장을 하고 강대상으로 올라간 목사님은, "나에게 동전 한 닢 주는 사람이 없었고, 심지어는 예배의 자리에서 쫓겨나기까지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랑의 방식인지를 생각해 보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라는 인사를 짧게 하고 내려왔습니다. 성도들은 교회 앞에서 구걸하던 거지를 입으로 비판하지는 않았지만 행동으로 멸시하면서 판단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맹완단청(盲玩丹靑)입니다. ㅡ
사람은 대체적으로 자신의 경험과, 두부 한 모 크기의 약 900g 정도 되는 뇌에 저장된 지식을 근거로, ‘객관적 사실을 넘은 주관적 해석’을 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물 안 개구리 식 논리’가 이 세상에 많이 존재합니다.
‘빅뱅론’도 그렇고, ‘진화론’도 그렇고, ‘다중 우주론’도 그렇습니다. 또 다중우주론을 말하기 이전에 필자는 솔직히 우주가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도 의심을 품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우주를 창조했다는 말씀이 없을 뿐만 아니라, 둥근 지구가 아닌 평평한 세상의 온 지면으로 기록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NASA의 보도들은 더더욱 믿을 수 없습니다. 그들이 내 놓는 영상과 사진들은 교묘하게 조작 된 것이 많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우주를 믿고, 둥근 지구를 의심 없이 믿는 것은 어릴 때부터 받아 왔던 허탄하고 거짓된 과학에 대한 세뇌식 학교 교육 때문입니다. 이 지식들은 우리 후대들에게도 세뇌식으로 주입 되고 있습니다.
우주는 100% 진공 상태가 맞습니까? 그렇다면 완전 진공 상태에서는 빛과 소리가 전달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맹신하고 있는 과학적 지식이 있다면 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부분은 실험으로도 증명이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1억 4960만km 떨어진 태양에서 우리가 사는 이곳까지 빛이 올 수 있습니까? 억지로 빛이 올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NASA가 보여주는 우주공간은 왜 어둡게만 나옵니까? 이 세상에서 만들어진 우주선과 우주복이 과연 100%의 진공을 견뎌낼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만약 이 질문들에 답을 한다면 과학의 모순을 인정하는 꼴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은 NANS가 꾸며낸 우주를 중심으로 하지 않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지면과, 지면위의 사람들과, 하늘과, 하늘위의 하늘들과, 하늘의 해와 달과 별들을 중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길어지니 각설하겠습니다. 여기서 말하고자 함은, 정형화 된 세상 지식 가운데에도,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 ‘객관적 사실을 넘은 주관적 해석’을 함부로 지껄여 댄 것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상대가 누가 됐건 함부로 판단하고, 비판하고, 정죄할뿐 아니라, TV화면에서 비쳐지기만 하면 확인하지도 않고 맹신하는 것들이 비일비재 합니다. 반론을 제기하는 것도, 학교에서 배운 지식의 범주를 넘어가지 못 합니다. 그러면서도 마치 제기하는 반론이 진리인양 우겨댑니다. 참으로 답답합니다. 이렇게 허탄하고 거짓된 과학에 철저하게 세뇌 당하면 돌이키기가 쉽지 않습니다. 주입 된 지식이 진리로 자리잡았기 때문입니다. 다만, 부탁하고 싶은 것은, 확인 되지 않은 내용을, 자존심 세운다고 학교에서 배운 지식의 범주 안에서 우기지는 말아 달라는 것입니다.
자기의 처지에 비추어 다른 사람의 형편을 헤아린다는 추기급인(推己及人)이라는 고사성어도 있습니다. 도둑놈 눈에는 모두가 도둑으로 보이고, 밥 먹듯이 거짓말 하는 사람 눈에는 모든 사람이 거짓말쟁이로 보이고, 배고픈 사람 눈에는 상대도 배고플 거라 여기고, 배부른 사람 눈에는 상대도 배부를 거라 여기는 마음입니다.
ㅡ 스페인의 한 병원에서 일하는 25세의 수녀가 임신을 했습니다. 상대는 마약 중독의 AIDS 환자였습니다. 주님도 용서하지 않을 거라고 모두가 수군거렸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 수녀는 인간 쓰레기에다가 수명이 경각에 달한 그 환자의 일루의 희망인 그의 2세를 이 세상에 남겨주기 위해, 저주의 화살이 자신에게 날아올 것을 뻔히 알면서도 희생을 자처했던 것입니다. 그녀는 아들을 낳고 죽었습니다. ㅡ
이렇게 우리는 표면만 봅니다. 누군가 비난 받는 일은 모든 사람이 저지를 수 있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자신은 그러지 않을 것처럼 비판합니다. 거짓말 한다고 비판하는 사람이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일 수 있고, 이 놈도 저 놈도 다 사기꾼이라고 말하면서 다니는 사람이 사기를 잘 치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간음죄나 절도죄에 대해 떠들고 다니는 사람들은 예외가 되겠습니까? 아닙니다. 그게 뭐든 비판하는 그 자체가 비판 받을 짓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카인 컴플렉스(Cain Complex)라는 심리학 용어가 있습니다. 유사한 오이디푸스 컴플렉스(Oedipus Complex)도 있습니다. 가까운 동료 간에 시기심과 질투심으로 비방하고, 누군가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해 상대를 비방하는 것을 말합니다.
미워서 비방하든, 맹완단청(盲玩丹靑)으로 비방하든, 카인 콤플렉스(Cain Complex)로 비방하든, 추기급인(推己及人)의 마음으로 상대를 쉽게 헤아리든 관계없이, 남을 함부로 비방하고 비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옳다고 여기시는 일이 아닙니다.
상대의 겉모습을 먼저 보고 급하게 판단하면, 그 상대를 정확하게 알지 못합니다. 내 입으로 급히 판단한 그 말이 내 귀에 들어와 나를 세뇌 시키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완전한 판단의 능력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누구도 예외 없습니다. 죽마고우(竹馬故友)라도, 수십년 함께 살아온 부부지간이라도, 상대의 이면까지는 절대로 볼 수 없습니다. 많은 시간과 깊은 통찰력이 요구 되어야만 그나마 조금 상대에 대해서 안다고는 말 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완전치 못 한 것은, 사람은 동물에게는 없는 속내, 곧 비밀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지전능하시며 처음과 나중이신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아시고, 미리 아시지만 사람은 지난 다음에야 조금 압니다. 이렇게 알아도 아는 게 아닌 것은, 다시 말씀드리지만 속내를 감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남을 함부로 비판하고 판단하는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어찌 감히 하나님이겠느냐고 생각한다면, 이후로는 그 누구도 비판하지 않으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선포하는 설교자들은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빚을 지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기독교 역사 이 천 년 이상이 흘러오는 동안 성경을 연구하고 해석하는데 평생을 바친 위대한 주석가들이 있었고, 기독교 서적을 집필한 저술가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로 인한 주옥 같은 기독교 유산들이 우리에게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들의 책을 읽고 자료들을 검토하면서 성도들과 나누고 싶은 은혜로운 내용들을 선별하고, 성령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더하여 기도하며 설교를 써내려갑니다. 이들이 빚진 설교자요, 저 또한 마찬가지로 빚진자입니다.
설교자는 이처럼 남의 말을 인용할 때도 많습니다. 물론 본인이 전혀 준비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연구하거나 설교한 내용을 그대로 설교한다면 그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인용한 것을 놓고 험담한다면 모든 설교자는 설 자리를 잃게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Maranatha!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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