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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6:5-8 [골방에서 기도하라]-1

Adullam 2021. 12. 14. 07:28

<마태복음 6:5-8>
5. 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7.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8.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골방에서 기도하라]-1

많은 사람들이 기도가 어렵다고 말합니다. “어떻게 기도하는지 잘 모르겠다. 조금 기도하고 나면 할 말이 없어진다. 어떻게 한시간 두시간을 기도하냐“등의 질문들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쓸 것 필요한 것을 다 아시는데 꼭 기도를 해야 되느냐“고 묻는 분들도 있습니다. 기도를 어려워하기 때문에 나오는 질문들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다급하고 위급할 때는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찾습니다. 그러나 막상 자리 펴고 앉아 기도하려고 하면 무엇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말문이 막힙니다. 이런 면에서 기도가 어렵다고 말하는 것은 솔직한 표현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오감을 가진 육체를 입고 세상의 지면 위에서 살고 있습니다. 시공의 세계에 갇혀 있는 아주 미약한 피조물입니다. 그래서 영이신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고 쉽지도 않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눈으로 봐야만 알고, 귀로 직접 들어야만 깨닫고, 손으로 직접 만져야만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보이지도 않으시고, 만져지지도 않으시며, 그분의 음성 또한 들을 수도 없습니다. 눈을 떠도, 손을 휘둘러도, 귀를 기울여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할 때 마치 먼 허공에 대고 혼자 중얼거리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이러한 이유만으로도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쉽지 않기 때문에 기도를 오해하여 잘못된 기도를 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본문 말씀에서 당시 유대인들의 잘못된 기도 방법을 크게 두 가지로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유대인들은 하나님께 기도한다고 하면서 실상은 사람에게 기도했습니다. 사람에게 기도 했다는 것은 5절 말씀으로 알 수 있습니다. “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그들의 기도는 사람을 의식하는 기도였습니다.

유대 지도자들은 기도의 중요성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철저히 가르쳤고, 기도를 잘하기 위한 궁리도 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생각이 앞섰습니다. 결국 기도의 본질은 사라졌고, 틀에 짜 맞춘 것과 같은 규격화 된 기도 세트(set)가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기도의 내용, 형식, 시간 등이 마치 공산화 된 제품처럼 된 것입니다. 즉 기도를 의식화(儀式化)했다는 말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기도는 신명기 6장 4절에 있는 구절을 그대로 반복하는 '쉐마(Shema)' 였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그들은 이 말씀을 하나의 기도문으로 규격화해서 계속 외우도록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슬픈 일, 기쁜 일, 그리고 여행 등과 같은 중요한 일상사마다 각각 해당하는 기도문을 만들었습니다. 심지어 식사 전, 식사 후, 취침 시간, 아침에 하는 기도 식으로 복잡하게 가르쳤습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시간까지 규격화하여 우리나라 시간으로 9시, 12시, 3시를 기도 시간으로 정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만연했던 이러한 기도 문화는 참된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러한 기도에 익숙해지면서 점차 사람을 의식하는 기도에 빠져들어 갔습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예루살렘의 12시가 되었습니다. 기도 시간입니다. 유대 사람들은 발 걸음을 멈추고 흔히 해왔던 것처럼 두 손을 들고 머리를 숙여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한 1-2분 정도 ‘쉐마' 를 외운 후 다시 일상생활을 계속합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 경건하다고 소문난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은 일부러 손을 높이 들고 오랫동안 시간을 끕니다. 같은 기도를 계속 반복합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칭찬합니다. “아~ 저 사람은 기도를 길게 많이 하는구나. 경건한 모습이로다!” 그들은 사람들의 칭찬을 의식하면서 기도를 계속 이어 나갑니다. 입으로는 규격화된 기도를 하지만 귀로는 자기를 칭찬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향해 있습니다. 그래서 더 시간을 끌면서 손을 들고 서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점차 사람들의 칭찬에 길들여져 갔습니다. 그래서 어떤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들은 일부러 사람이 많이 다니는 시장 바닥이나, 회당 거리, 또는 큰 도시 모퉁이에 서 있다가 시간이 되면 보란 듯이 큰 소리로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마음을 꿰뚫어 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6절)

기도는 하나님께 올려 드려야 합니다. 사람을 의식한 기도는 기도가 아닙니다. 예로, 사람들 앞에서 대표 기도할 때 유달리 길게 기도하는 것도 외식하는 기도일 수 있습니다. 식사기도 할 때 나라와 민족과 개개인의 기도 제목까지 꺼내어 그 자리의 성격에서 벗어난 기도를 하는 것도 결국 사람들을 의식하는 외식하는 기도일 수 있습니다.

주일예배 대표 기도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집에서는 1분을 넘기기 어려워하면서 강대상에만 서면, 아담부터 시작해서 모세와, 선지자들을 거쳐 요한계시록의 예수님의 재림까지 죽 훑으며 기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대표 기도자가 되면 곳곳에서 한숨 소리가 새어 나오기도 합니다. “아, 또 저 장로님이시네, 기도 또 한참 하시겠어. 한참 기다려야 되겠네...”

이러한 기도를 하는 것은 사람을 의식하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많이 하는 것처럼 보이려는 경건의 모양일 뿐입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는 사람을 의식하는 기도를 조심해야 합니다. <계속>

Maranatha!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아둘람복음공동체?현명인목사>
홈페이지 : www.adullamch.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