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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6:1-4 [은밀하게 구제하라]-2

Adullam 2021. 12. 8. 07:01

마태복음 6:1-4
1.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2.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3.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4.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은밀하게 구제하라]-2

외식하는 자를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해 볼 수 있습니다.
(1)악하면서도 선을 가장(pretence)하는 유형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이 남을 속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22:15-18).
(2)자기 만족에 도취하여 자기도 모르게 자기 자신과 타인을 속이는 유형입니다. 이런 사람은 보통 스스로 경건한 체하지만, 오래 가지 못하고 곧 발각됩니다(9:1-5). 당시 바리새인들이 대체로 이와 같은 유형이었습니다.
(3)외식을 하면서도 하나님과 사람을 위해 스스로 가장 훌륭한 일을 하고 있다고 믿는 유형입니다. 이런 사람이 가장 완벽한 위선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행위를 보는 모든 사람을 속이면서도 타인들로부터 존경을 받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 모든 것들에 대해서 은밀한 가운데 그의 행위대로 갚으십니다.

우리가 행하는 구제 등의 자선을 우리가 잊고 지내면 잊게 되는 만큼,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주목해 보십니다. 그리고 친히 드러나도록 우리에게 아버지가 되어 갚아 주십니다. 또한 이것은 하나님의 기쁨이며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반면에 우리가 외식하는 자가 되어 우리의 구제를 높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하나님은 그것을 무시하시며, 은밀한 중에 그 위선의 속 깊은 내면에 대하여 심판주로 다가오십니다.

갚아주시다는 것은 ‘그에 합당한 양을 어김없이 되돌려 준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갚아 주실 것인지에 대한 보상의 성격은 언급 되고 있지는 않지만, 성경이 계시하고 있는 여러 증거들을 보면 현세와 내세에서의 ‘지고(至高)한 기쁨’과 ‘원숙한 인격’과 ‘영원한 생명’으로 주어질 것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자신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혈통과 집안배경에 대해서 자랑하고 싶어 합니다. 권세와 재물에 대해서, 지위와 인격에 대해서, 학력과 성품에 대해서 자랑하고 싶어 합니다. 직접적으로 자랑하기도 하지만 은근히 자랑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또 작게는 입은 옷가지들에서부터 자동차와 명품가방들과 구두 등 몸에 걸친 것들을 자랑하고 싶어 합니다.

특히 종교인들은 자신의 경건성에 대하여 쉽게 유혹을 받습니다. 나름대로 신앙생활 좀 한다고 하면서 티가 날 듯 말 듯 한 생색을 내며 주의 종들을 섬긴다고 하는 교인들,

많은 십일조와 헌금을 드린다고 하면서 주의 종들을 함부로 비판하고 교회를 판단하는 교인들,

나름대로 성경도 읽고 기도 생활도 하고 예배 생활도 좀 한다고 하는, 그러나 말씀의 권면은 정중히 사양하는 자의적 신념이 강한 교만한 교인들입니다.

그들은 경건을 위장하여 선하고 의롭게 보이려는 태도를 보입니다. 자기 자신만 보지 못하는 그 병의 이름은 경건의 모양이요, 경건을 가장한 종교적 위선입니다.

하나님을 경건하게 믿고, 오직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성도는 서두에 거론한 바 대로 구제, 기도, 금식 이 세 가지를 기독교 신앙의 필수적 요소로 삼아 가까이 해야 합니다. 구제는 이웃과의 관계에서, 기도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금식은 자신과의 관계에서 보여 주는 경건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구제, 기도, 금식은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철저한 경건의 훈련을 통해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적어도 이 부분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철저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소위 경건 행위에 능숙한 그들은 이러한 것들을 은근히 자랑하기에 바빴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경건은 하나님께도 인정받고, 사람에게는 자랑하고 싶어 하는 저급한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예수님은 좋지 못한 동기에서 비롯된 그들의 행위들을 책망하셨습니다.

구제는 행동하는 경건입니다. 야고보서 1장 27절은 더럽지 않은 신앙 행위에 대해서 정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곧 [아버지] 앞에서 순수하고 더럽지 않은 신앙 행위는 이것이니 즉 고난 중에 있는 아버지 없는 자들과 과부들을 돌아보고 세상으로부터 자기를 지켜 더럽혀지지 아니하는 것이니라.”

곧 가난한 자, 병든 자, 고통 당하는 자들을 외면하지 않고 돌보아 주며, 자신의 것을 나누어 주는 것이 구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구제를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이라고 말씀합니다. 즉 성경을 날마다 읽고, 예배를 빠지지 않고 드리고, 날마다 엎드려 기도만 하는 것이 경건이 아니라,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돌아보는 구제가 동반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창세기12:2-3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 주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를 복 주실 때 하시는 말씀의 개념은, "너만 복 받고 잘 살라는 게 아닌,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는 개념입니다.

"너 때문에 가족이 복을 받고, 너 때문에 네가 속한 곳이 복을 받고, 너 때문에 나라와 민족이 복을 받고, 너 때문에 모든 족속이 복을 받게 된다는 이 말씀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복을 전하라는 의미입니다. 이 복은 복음이기도 하지만 의(義) 곧 경건의 능력으로 말미암은 구제가 포함 되어 있습니다.

나름 성공을 거둔 사람을 보면, (1)자신이 가진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예수님께 드려 5천 명을 먹이는 사람과, (2)5천명 분을 혼자 깔고 앉아 먹는 사람으로 나누어 집니다. 전자는 경건의 능력으로 구제하는 자요, 후자는 그냥 욕심 많은 세속의 부자일 뿐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잘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도 잘 믿고, 경건의 능력으로 5천 명도, 그 이상도 먹일 수 있는 선한 부자들이 많이 나와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 이름이 창대하게 되는 하나님의 복 그 자체가 되어야 합니다. <계속>

Maranatha!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아둘람복음공동체?현명인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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