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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5:13~16 [사랑의 희생, ‘빛과 소금’의 삶]-3

Adullam 2021. 8. 11. 09:33

■ Adullam Ministry & Church?

<마태복음 5:13~16>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사랑의 희생, ‘빛과 소금’의 삶]-3

▶ 신앙생활은 추상적이지 않아야 합니다. 모나고 잘못된 신앙은 고쳐야 합니다. 신앙인들은 바다 밑으로 내려 갈수록 높아지는 엄청난 수압을 이길 수 있도록 단단하고 견고하게 제작된 잠수함 같아야 합니다.

세상의 여러 가지 탄압과 박해와 역차별이 있더라도 빛이 되고 소금이 되는 믿음을 지켜내야 한다는 뜻입니다. 어둠에 묻혀버리는 빛이 되어서도 안 되고, 맛을 잃은 소금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신앙인은 어둠을 이기는 빛이여야 하고, 맛을 내는 소금이어야 합니다.

신앙인들이 빛과 소금으로 있을 곳은 세상입니다. 세상에서 믿음의 본을 보여야 됩니다. 세상의 빛이 된 신앙인답게(마 5:14) 우리의 빛이 사람들 앞에서 비치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해야 합니다.

‘나는 과연 세상의 빛이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하고 있는가’ 돌아봐야 합니다. 내게 있는 직분은 실제적 섬김을 위한 직분(職分)인가? 호칭을 위한 직분인가를 돌아봐야 합니다. 도덕이 실종되고 부도적이 팽배한 사회의 어두움을 내가 끌어다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 이렇게 나를 돌아보고 예수님 믿는 ‘내가 빛과 소금이라는 사실을 직시’했다면 다음은 어떤 영역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하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도덕적 우위를 지키는 일에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도덕성이 높다'고 하는 것은 선과 악을 정확히 분별할 수 있는 높은 안목을 가진 것을 말합니다. 이어 '도덕성이 건전하다'고 하는 것은 악을 버리고 믿음의 열매로써의 선한 행실을 추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도덕적 우위를 지키는 차원에서의 예수님을 믿는 사람, 도덕적 우위를 지키는 차원에서의 예수 그리스도께서 머리 되신 모든 교회는 이 세상 누구보다도, 이 세상 어떤 단체, 어떤 집단보다도 도덕적 기준선이 높아야 합니다. 이것이 없다면 빛이니, 소금이니 하는 말을 입에 올리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 될 뿐입니다.

가면 갈수록 세상의 도덕적 표준치는 낮아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세상이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다는 뚜렷한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녀가 부모에게, 학생이 선생에게, 제자가 스승에게, 부하가 상관에게, 후배가 선배에게 하는 모든 기본적 예의들도 그 표준치가 낮아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잦은 하극상이 일어나고, 그래서 질서와 조화가 쉽게 무너집니다. 필자 또한 도덕적 표준치를 떨어 뜨리는 주범에 해당합니다.

이러한 것들은 절대악, 절대선이라는 도적적 표준치를 낮아지게 만듭니다. 이 표준치가 낮아질수록 선과 악은 물에 술 탄 듯, 술에 물 탄 듯 유야무야 되어갑니다. 이것이 종교쪽으로 넘어오면 종교다원주의가 됩니다. 유일신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다양한 우상 잡귀신들의 이름과 통합하고 혼합해 버립니다. 이런 배교의 모습이 선명하게 자주 나타나는 것은, 거듭 말하지만 도덕적 표준치를 끌어 내림으로써 그만큼 자신들이 갖는 죄책의 부담을 축소시키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각자가 자기 좋은 대로 도덕성을 디자인합니다. 더 나아가 편의적 삶을 위한 종교가 되도록 종교다원주의라는 이름으로 기독교의 절대적 신앙을 왜곡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필요할 때는 두손 들고 '나의 하나님' 이라고 부르지만, 필요 없다고 생각되면 ‘내가 하나님'이라고 교만한 소리를 냅니다. 예수님을 믿는 성도가, 예수님이 머리되신 교회가 이런 사단의 시류에 휩쓸려가면 절대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수 없습니다.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가 쓴 『카라마조프의 형제』라는 책에는 “우리가 하나님을 밀어내 버리면 모든 것이 허용된다” 는 글귀가 있습니다. 이 말은 선과 악이 따로 없이, 무엇이든지 다 허용 된다는 뜻입니다. 경우에 따라 선이 악이 될 수도 있고 악이 선이 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자기가 기준이 되어 마음대로 바꿀 수 있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무장하고, 그 지식을 기준으로 삼아 도덕적 우위에 서서 빛과 소금의 직분을 감당해 나가야 합니다. 교회의 존재로 세상이 복음의 짭잘한 맛을 알게 해줘야 하고, 복음의 빛으로 어두운 세상을 비추는 등대 역할을 해야합니다. <계속>

Maranatha!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아둘람복음공동체?현명인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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