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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19:1-2 [악의 멸망과 성도의 교훈]-1
Adullam
2021. 3. 13. 08:19
“이 일 후에 내가 들으니 하늘에 허다한 무리의 큰 음성 같은 것이 있어 이르되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 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지라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를 심판하사 자기 종들의 피를 그 음녀의 손에 갚으셨도다 하고”(요한계시록 19:1-2)
[악의 멸망과 성도의 교훈]-1
요한계시록 4장에서18장까지는 환난 때에 있을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짐승의 멸망을 다루었습니다. 그 중 17-18장은 큰 음녀 바벨론의 멸망에 대한 환난의 끝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제 19장부터는 주목할 만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재림과 최후의 전쟁에 의한 짐승의 멸망, 그리고 선명한 초점으로 맞춰지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십자가의 멍에를 짊어진 채 협착하고 좁은 길을 걸어왔던 성도들의 눈앞에 ‘영생복락’이라는 불변의 소망이 실제가 되어 펼쳐집니다. 일순간의 기쁨이 아닌 영원한 기쁨입니다. 영적 전투가 종결된 완전한 승리의 도래입니다.
19장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이러한 내용의 전개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내용 첫째, 바벨론의 멸망으로 인해 본서의 중심 부분이라 할 수 있는 환난의 과정이 끝납니다. 그러나 환난의 끝은 종결의 의미가 아닌, 모든 것의 원인이 된 악의 원흉들에 대한 심판으로의 시작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서 시작 되는 이 심판은 짐승의 멸망과 사단의 심판 및 불경건하며 불의한 삶을 살아왔던 모든 인류에 대한 백보좌의 심판(20장)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내용 둘째, 요한계시록 4장-18장에서 지상에서의 환난과 하나님 나라의 구원을 교차적으로 기록하고 있다면, 19장과 20장은 최후의 심판과 천년 왕국이라는 지복(至福)의 환상을 대조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히 짐승은 사단의 수하로서 환난을 있게 한 주도자 노릇을 했습니다(13장). 그러나 큰 음녀 바벨론의 멸망으로 인한 환난의 종식이 있은 후(18장) 사탄과 그의 모든 수하들은 재림하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직접적인 심판을 받게 됩니다.
내용 셋째, 하늘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음성과 어린양의 혼인 잔치의 장면은 18장에 묘사된 왕들과 상고들과 선원들의 애가와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린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백마를 타고 강림하셔서 사단의 세력 안에서 온갖 죄악과 우상 숭배를 조장한 주적인 짐승을 멸망시키시고 불 못 속에 가두십니다. 이것은 악의 끝은 필연 멸망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과, 거듭 거론하지만 이 멸망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악의 원흉들은 자신들의 끝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알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사단의 세력들은 예수 그리스도께 대항하기 위하여 자기들의 세력을 모으기에 급급합니다. 땅에서 올라온 짐승과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이 야합하여 각 나라의 왕들을 미혹하고 사치와 향락에 취하게 하며, 안전하고 편의적인 삶을 제공한다는 명분으로 짐승의 표를 강제적으로 받게합니다. 이것이 큰 성 바벨론이 만들어져 가는 과정입니다.
이 안에는 수 많은 음녀들과 음녀들의 어미가 있으며 거짓 대언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하는 짓은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단의 짓입니다. 어둠 가운데서 거짓말로 일으킵니다. 서로가 서로를 속이고 그 속임수 안에서 영생이 아닌 영벌에 이르게 합니다. 자신들의 끝을 아는 그들은 이 더러운 야합을 멈추지 않습니다. 세상의 끝을 향할수록 두려움이 증폭되기 때문입니다.
권력을 선하게 사용하면 끝이 두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권력을 남발하면 끝으로 갈수록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그 끝이 오기 전에 자꾸 무엇인가를 만들어 냅니다. 끝자락에 서게 될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 장치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더욱 깊은 수렁에 빠져 들어갈 뿐이며, 그 죄악은 더욱 커져갈 뿐입니다. 현 정부는 이와 같은 두려움을 안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끝을 예상하기에 그 예상이 실제 되는 것을 막기 위한 수단으로 권력을 남용한 일들을 벌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자유대한민국이 경험해보지 못한 이 더러운 꼴들을 우리나라 국민들이 경험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발버둥쳐도 저들의 끝은 곧 도래됩니다. 심는 대로 거두는 하나님의 법칙은 저들에게도 예외 없이 적용됩니다.
하물며 죄로 가득한 이 세상의 끝은 어떻겠습니까? 큰 성 바벨론의 멸망은 확고하게 정해져 있습니다. 짐승과 거짓 선지자가 불 못에 던져지는 것은 뒤 바뀔 수 없는 실제로 도래하게 됩니다. 이 끝이 오기 전까지의 세상은 마치 악이 득세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불의가 정의와 선을 누르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참 되고 온전한 신앙보다는 맘몬에 대한 우상 숭배가 성행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겉으로 보이는 거짓된 단면일 뿐입니다. 이면에 있는 실제는 한시적인 사단의 득세일 뿐이며, 멸망으로 치닫는 과정일 뿐입니다.
이상의 말씀들은 우리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나가야 하는지를 반면교사 삼도록 교훈해 줍니다.
성도는 반드시 성경의 창을 열어 세상의 실상을 봐야 합니다. 무엇이 진리이고 무엇이 진리 같은 것인지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무엇이 영생복락에 이르게 하는 단초이고, 무엇이 영원형벌에 이르게 하는 악의 원흉인지 바르게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해야만 마라나타를 외치며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소망할 수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1장 12절의 말씀처럼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하게 됩니다.
이와 같은 성도들만이 소망을 놓치 않습니다. 인내로써 믿음을 지켜나갑니다. 끝까지 충성된 종으로 살아갑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는 삶을 살아갑니다. 이것이 두려움과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삶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입니다. 모든 성도들의 삶이 이와 같기를 원합니다. <계속>
Maranatha!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아둘람복음공동체?현명인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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