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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의 트라우마]

현명인목사 2017. 6. 24. 14:04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요한복음 21:17)

 

[베드로의 트라우마]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긴 이름의 정신적 심리적 상처는 한 생명이 수십 년을 살아가는동안, 크고 작고의 차이만 있을 뿐 피해갈 수 없는 장애 중의 하나라고 말합니다.

 

나와 똑같은 사람이 세상에 없으며, 내 마음에 꼭 드는 사람이 없으니 크든 작든, 많든 적든, 예외 없이 모든 사람이 트라우마와 무관할 수 없습니다. 목사도 장로도 권사도 예외 없습니다. 아무리 존경받는 선인이라해도 예외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도 밖에서도, 일상생활에서도 트라우마가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동물들에게도 트라우마가 있는데 하물며 사람이겠습니까?

 

문제는 충격이 큰 경우, 그래서 잊혀지지 않는, 그러나 평소에는 기억하지 못하여 잊고 살아가는, 그러다가 충격 받은 그 상황이나 물체 등과 정면으로 만났을 때, 잊고 있던 그 때 그 상황의 충격이 그 때처럼, 마치 동일 상황의 재현처럼 느껴지는 트라우마는 확실히 질병입니다.

 

인간으로서는 최초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고 고백한 베드로도 트라우마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제자들 중 대표격인 베드로는 주님과의 마지막 식사 때 진실하게 그 마음을 고백하였습니다.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에도 가기를 각오 하였나이다..."

 

이쯤이면 주님이 극찬을 해주셔야 맞습니다. 그런데 의외의 반응을 보이셨습니다.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과거의 일부를 기억하고, 현재의 일부를 알며, 미래를 깜깜하게 모르는 인간이 그런 반응을 보였다면 뺨을 맞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그렇게 말씀 하셨다면 반드시 그리 됩니다. 그리고 그 밤이 밝기 전에 어김없이 그렇게 되었습니다. 모닥불 앞에서, 그것도 세 번이나 대제사장의 하인들에게 "나는 예수를 모른다!"고 딱 잡아떼었습니다.

 

그 현장 묘사가 이렇습니다.

세 번째 잡아 뗄 때 닭이 울었습니다. 동시에 주님이 베드로를 바라보셨습니다(요22:60-62). 약간의 거리는 있겠으나 베드로의 시선이 그 모닥불 앞에서 주님이 자기를 돌아보는 시선과 충돌하였습니다.

 

어둠 속의 모닥불은 베드로에게 엄청난 트라우마 입니다. 몇 시간 전의 호언장담을 비겁하게 뒤 엎은 그 배신의 쓰린 상처가 얼마나 괴롭고 슬프고 기막혔겠습니까. 아마도 그의 남은 생애 전반에 걸쳐 모닥불 앞에 다가 갈 수 없었을 것입니다. 냉기가 누르는 그 시대의 밤이기에 마당의 모닥불은 아주 흔한 난방 수단이었습니다.

 

주님의 부활 후 갈릴리 호수에서 베드로를 비롯한 일곱 명의 제자들이 밤을 지새우며 고기를 잡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직업은 나면서부터 어부요, 그래서 그들의 몸 속에 어부의 피가 흐르고 있었을테지만 고기를 잡지 못하는 신비한 두 번째의 경험(눅5장, 요21장)으로 인해 의아한 피곤함과 허탈감으로 가득했을 것입니다.

 

그들의 배를 호숫가에 댈 무렵 예수님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라" 그러자 153마리나 잡혔습니다.

 

부활 후 세 번째 제자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주님은 호숫가에서 90미터쯤의 거리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앉아 계셨습니다. 제자들이 잡은 물고기로 조촐한 아침 식사를 함께 하셨습니다. 이어서 주님은 베드로에게 똑같은 질문을 세 번 이나 하셨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모닥불, 식사, 3회의 같은 말은 베드로의 모닥불 트라우마를 말끔히 치유하는 감격의 현장이었습니다.

 

주님은 나에게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 물으셨습니다. 그리고는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오래전 신학교를 세 번 다니다가 세 번 그만둔 전력을 갖고있습니다. 그리고 그 과거를 잊고 지내던, 세월이 한참 지난 어느 날, 또 다시 나를 부르셨습니다.

 

난 기도온처럼 부르심의 표적을 구했고, 제자 도마가 '너 해도 해도 너무한다' 할 정도로 주님의 부르심을 의심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장난이 아니었음을, 현실 보다 더 현실적인 하나님의 뜻이었음을 성령님의 조명하심으로 알게 된 후, 더 이상 거부할 수 없는 두려움과 떨림으로 무릎 꿇고말았습니다.

 

난 아직도 내가 주님의 종으로 살아가는 게 믿어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나 같은 놈이 종이라니...' 그러나 주님은 이 작고 부족한 나를 통하여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가는 섭리하심을 자주 체험하게 해주십니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 나라에 가는 그 날까지 자신있게 고백합니다.

 

<주님은 나의 그리스도시이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할렐루야!

 

Maranatha!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아둘람복음공동체?SNS선교사>

 

※ 7월 OO일부터는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까지, 하나님의 편지를 배달하는 하나님의 우편부가 되어 매일 한 통씩 하나님의 편지를 배달 해 드리겠습니다. 성경 66권 전체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며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는 귀하고 거룩한 시간이 될 것을 믿습니다. 약 2년 전 하나님의 편지로 은혜 나눈바 있으나 새롭게 수정하고 보충하였으므로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를 더욱 깊이 있게 누리게 될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입니다!

 

※ <아둘람복음공동체>의 '영상큐티'를 전도목적과 신앙교육용 큐티로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당신도 SNS선교사 입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https://youtu.be/kNC5pIQykM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