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후서 <10>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디모데후서 1:13-14)
[복음, 율법에서 믿음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자기 몸을 아끼지 아니하고 복음을 전했던 사도바울처럼, 이 세대에도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복음을 전하는 주의 종들이 있습니다. 이 척박한 조선 땅에 복음 들고 찾아온 선교사들이 있었기에 하나님의 은혜로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하고 있듯, 이 나라에서 복음 들고 나간 해외 주둔 선교사들이 있기에 그들이 머물고 있는 그 곳이 거룩한 복음의 진원지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떠난다는 것은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나고 자란 곳에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오직 십자가 복음을 가슴에 품고 주님 향한 뜨거운 사랑과 열정만을 갖고 나간다는 것은 주님께 받은 사명이 있기에, 죽으면 죽으리라는 충성이 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자기 몸을 돌볼 여력이 없이 고난 당하며 복음을 전했던 사도바울은 아마도 자신의 나이보다 늙어 보였을 것입니다. 저마다 다르겠지만 해외에 주둔하고 있는 요즘의 선교사들 역시 제 나이로 보이는 사람이 드뭅니다. 언제 죽게 될지 모르는 기독교 박해 국가에서 죽기를 각오하고 한알의 밀알로 살아가는 선교사들을 위하여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무지와 또는 막연한 지식으로, 복음이 무엇인지 모른채 살아가는 많은 영혼들에게 하나님을 아는 바른 지식을 심어 주는 선교사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당시 문명화된 여러 도시에 많은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의 사역은 위대했지만 네로 황제 당시 감옥에 갇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제자 디모데는 바울의 목숨이 풍전등화임을 직감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런 디모데에게 힘을 내라는 말대신, 그의 시선을 복음으로 향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이 고난이 부끄럽지 않다는, 곡언법이라는 수사적 표현, 곧 반의어의 부정으로 복음만을 자랑한다는 강한 긍정을 나타냈습니다.
이를 풀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시련에 처한 것도 아니고, 곤경에 빠진 것도 아니다. 나는 지금껏 복음을 전하면서 이것이 올바른 것인지, 혹은 지혜롭지 못 한 것인지 의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나는 내가 믿는 주님을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날까지 나의 주님이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하고 있다"
복음은 앞서도 거론한 바 있지만 특정한 기질도 철학도 아닙니다. 복음은 분명하게 알 수 있고 정의 내릴 수 있는 교리이며 순복해야 하는 계시입니다. 복음은 이를 믿는 자들로 하여금 예기치 않게 생겨나는 모든 일들을 당당히 맞설 수 있게 해줍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디모데에게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 받아 지키고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딤후 1:13-14) 바로 이 말씀이 사도바울이 말한 핵심 논증이었습니다.
오늘날 수 많은 주의 종들과, 세계 각지에 나가있는 선교사들 또한 복음을 들어야 하는 자들에게 이 말씀을 복음의 토대로 삼아 적극적으로 권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말하고자함은 단지 주의 종들 뿐만이 아니라, 예수 믿는 모든 자들이 이미 로마서 1:6의 말씀에 근거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것(종)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예수 안에 있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적극적으로 권고하며 살아내는 선교적 존재의 정체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필자가 수년간을 매일 같이 큐티와 신앙칼럼의 형식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은, 그리고 강단에 서서 말씀을 전하는 것은, 교회의 대리인이어서도 아니요, 일종의 세일즈맨처럼 성도들의 후원을 받아 교회를 성장시키기 위함도 아닙니다. 무익한 종 조차도 되지 않는 필자는 창조주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진리의 복음과, 이 복음에 따른 전인구원의 축복에 관하여 전하고 있을 뿐이며, 온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주시겠다고 하신 그 은혜의 선물을 갈망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을 아는 바른 지식을 권고할 뿐입니다.
복음에는 권위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시의 권위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세상의 패턴에 물든 자기의 이성을 선택하던가, 아니면 권위의 복음에 순복하는 삶을 살아아합니다. 선택은 스스로가 하겠지만 그 선택 또한 하나님의 계획하심 안에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성경은 이 양자택일의 문제를 놓고 고민하는 자들에 대하여 이렇게 경고합니다. "아무도 자신을 속이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어리석은 자가 되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고전 3:18). 이 말씀은 복음에 순복하는 자들에 대하여 세상이 그들을 어리석은 자로 치부해 버린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아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데 아직도 성경을 의지하나?, 학교 다닐 때 진화론도 안 배웠나?, 인간철학에서 성경이 나온거 아닌가?, 최첨단 과학시대인데 이 과학에 대해서 이토록 무지한가? 고리타분하고 케케묵은 성경이 진짜 신의 메시지라도 되는가? 어리석도다! 예수 믿는 너희들은 참으로 어리석도다!"
이 복음을 전하던 사도바울 당시의 사람들이 그랬습니다. 이 때문에 감옥에 갇힌 바울은 자신이 전한 그 복음을 굳게 붙잡으라고 데모데에게 전합니다. 다른 사도들 또한 이 복음을 전했다고 말합니다. 오늘날도 이 복음은 선포되고 있습니다. 다른 사도들이 전한 복음,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 오늘날 주의 종들이 전하는 복음은 완전하게 동일하며 완벽하게 일치합니다. 전하는 자들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 한 분께 받은 메시지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하여 바울은 "우리 주를 증언함"이라고 표현 했습니다.
이것이 바울을 사도 되게 한 근거요, 이것이 복음을 가르치고 전하는 자들을 하나님의 종 되게 하신 근거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것(종)입니다(롬 1:6). 아담 안에 있던 우리가 예수 안에 있게 되었고, 율법 아래 있던 우리가 믿음 안에 있게 되었으며, 사망 안에 있던 우리가 생명 안에 있게 되었으니,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들이라 아니 말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 앞에 있는 피조물의 의무와 책임이 계시에 대한 복종이라는 사실을 다시 상기하고 명심해야 합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
<나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다>라고 생각한다면 하나님의 계시의 권위인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주저하지 마시고 전도하십시오. 세상의 눈길을 의식하지 마시고 전도하십시오. 세월을 아끼며 전도하십시오, 때가 악합니다(엡 5:16). 천국이 가까이 왔습니다(마 3:2).
Maranatha!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아둘람복음공동체.SNS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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