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요한복음 5:5-9)
[사망의 세월, 그 38년의 종지부]
300만 내외쯤으로 추산되는 이스라엘백성들이 430년 만에 엑소더스에 성공한 이 역사는 불가사의 입니다. 스펙타클 영화 <spectacle film>에서나 볼 수 있을 픽션이라면 그런가보다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1956년 작품인, 허리우드의 명감독 세실 B 데밀이 연출한 영화, <십계>는 전무후무한 명화로 꼽힙니다. 세실 B 데밀은 편집을 마치고, 시사회를 보고 난 첫 마디로 <하나님, 이게 정말 제가 만든 작품입니까!>라는 감격스러운 고백을 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자그마치 3시간 40분짜리 대작입니다.
모세는 출애굽 후 2년 여 만에 그들이 정복할 가나안 땅으로 각 지파에서 한 명씩 선발한 12명의 정탐군을 보냈습니다. 40일 만에 돌아온 그 12명의 보고회가 열렸습니다. 그들 중 10명은 “그 땅의 견고한 성읍들과 거인 족에게 우리는 밥일 뿐이다”라는 절망적인 보고를 하였습니다. 차라리 되돌아가자는 주장입니다. 단지 2명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기로 약속한 땅이니 가나안으로 들어가자고 주장하였습니다.
신명기는 그 현장인 가데스 바네아를 떠난 요단강 동편의 모압과 에돔 사이의 접경지역 계곡인 세렛 시내를 건너기까지 38년이 소요되었다면서, 그 38년 동안에 그 시대의 모든 군인들이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명하신대로 진영 중에서 다 멸망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신2:14).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출애굽 직후의 20세 이상 장정이 60만3천5백 명으로써(민1:46) 가나안으로 가는 과정에 전투가 벌어지게 될 경우, 전사로 나설 장정을 파악한 것입니다. 그들이 요단강만 건너면 목적지인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데 그 강을 건너지 못하고 모두 사망하였다는 이야기입니다.
단지 2명, '가나안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땅이니 들어가자'고 주장한 여호수아와 갈렙만 20세 이상 남자들 중에서 살아남아 가나안 정복의 선봉장이 되었습니다. 그 두 사람도 이성적으로는 가나안 정복이 믿어지지 않았겠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의 약속이었기에 온전히 믿었습니다. 그 혹독한 광야의 유랑 38년은 믿음 없던 자들에겐 죽음의 시간이었습니다.
요한복음 5장에 38년 된 병자가 등장합니다. 혈기마른 자들에 속하는 병자로 보입니다. 도움 없이는 일어서지도 못합니다. 그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눈 감으면 시체입니다. 그 인생의 절반의 세월을 병자로 지내왔으니 죽음이 문턱에 다가와 있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그가 있는 베데스다 못에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물으셨습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예수님의 처방은 간단명료합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그는 자리를 들고 일어나 걸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사망의 세월이었던 그 38년의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우리가 그 사람이라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죽음의 세월 38년의 중환자..., 일어날 수도 없는데 일어나라...?, 짐이 되는 자리를 들어라...?, 이에 더하여 걸어가라...?
사람은 무엇을 믿는 것일까요? 객관적으로든, 주관적으로든 합리성이 결여되면 믿지 않습니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것만 믿습니다. 우물 안 세상만 바라보고 사는 개구리와 같습니다.
주님의 우리를 향하신 요구는 <너희 경험이나 이론에 근거하지 말고 내가 하라는 그대로만 하라>입니다. 그런데 그리하면, 바보 짓 같지만, 그렇게 됩니다. 믿음은 이성과 지성과 경험적 근거들에 의한 합리적인 판단이 아닙니다. 성경의 믿음은 이론적이지 않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 구하는 기도의 전제(前提)가 <믿음>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11:24)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기도의 전제(前提)는 믿음입니다. 신앙생활의 기본도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기본은 믿음입니다.
Maranatha!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계원대학교회.아둘람복음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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