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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편지]-베드로후서(2/3)

현명인목사 2018. 5. 1. 07:06

[하나님의 편지]-베드로후서(2/3)

 

To.사랑하는 나의 아들 딸에게...

 

내가 이 편지를 쓸 당시, 대부분의 백성들은 거짓교사들로 인해 눈이 멀어 있었다. 나는 눈이 먼 그들에게 사람들과 관계 맺는 옛 방식을 친절한 기독교로 위장시키지 말고 십자가에 못 박아버리라고 말했다. 하지만 거짓 교사들은 내 이야기를 왜곡시켜 자기 중심적인 갈망을 만족시키는 데 나를 이용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꾸며 냈다.

 

네가 그들의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면, 너도 네 이익에 근거하여 사람들과 관계를 맺게 될 것이고, 그것이 잘못 되었다는 것 조차도 깨닫지 못 하게 된다. 즉, 죄를 인지하지 못하게 된다는 뜻이다. 뿐만 아니라 자기 이익을 얻기 위해 관계를 맺는 것과 내 아들을 따르는 삶 사이의 갈등마저도 사라지게 된다

 

거짓 교사들은 두가지로 가르친다.

 

첫째, 그들은 "자기들을 값 주고 사신 주를 부인"한다(2:1). 즉,내 아들이 자기의 피로 값을 치르고 산 자유와 이기적으로 관계 맺는 성향 및 형벌로부터의 자유를 경축하기 보다는 십자가 의미 자체를 바꿔 버린다는 얘기다. 그 중에서도 자신은 사랑 받는 자고, 자신의 행복을 위한 것은 뭐든지 정당하다고 말해 주는 사랑의 상징으로 십자가를 바꿔 버리는 것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그것들로 인해 '진리의 길' 곧 내 아들의 죽음으로 얻은 이타적인 새로운 삶의 길을 불명예스럽게 했다(2:2).

 

둘째, 거짓 교사들은 내 아들이 다시 오는 것이 마치 소설인 양, 그것이 현재를 사는 태도에 아무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무시한다(3:3-4). 그래서 개인의 거룩함보다 이생의 삶을 잘 꾸려 가는데 더 큰 관심을 갖게 만든다. 현재를 잘 살아가는 것에 대한 그릇된 소망이 그들의 삶의 방식을 결정하게 하는 요인이 된다.

 

자기 중심적인 선택을 정당화하는 이런 것들이 사탄적 선택이다. 이 선택에 뒤 따르는 것은 내가 기뻐하는 완전한 삶에 대한 소망을 대체로 무시하고 경멸한다는 것이다. 내가 주는 소망이야말로 나를 따르는 자들이 이생에서 겪는 고난을 통해 나의 거룩한 성품을 드러낼 수 있는 특별한 기회로 삼게 할 뿐만 아니라 그 고난을 기뻐하며 견딜 수 있는 힘을 공급해 주는데도 말이다.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을 듣다 보면, 너는 이기심을 벗어 버릴수 없게 되고, 네 이웃들과 이타적으로 관계 맺을 수 없게 된다. 하지만 내 영을 따라, 내 말을 통해, 내 아들 안에서 충만히

드러난, 찬란하게 빛나는 내 성품 속으로 들어오게 된다면, 네 자신을 챙기려는 충동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나는 네가 내 이야기를 말하면서 살아가길 원하고 있다. 이 두려움 많고 낙심 되는 세상에서 당장의 위안을 찾아 나를 떠나고 싶은 유혹을 물리치고, 너의 관계 맺는 방식을 통해 내 성품을 드러낼 수 있게 되기를 원한다. 그러기 위해서 너는 늘 나와 깊이 교제하고 동행해야 한다.

 

다음 편지에서는 이 말의 의미를 설명해 주마. 이제 결승선에 거의 다 왔다. 너는 네 집, 네 본향에 가는 길에 있다. 내 영의 리듬에 춤추며 나를 향해 걸어오는 믿음의 발걸음을 멈추지 말거라. 완전한 기쁨이 너를 기다리고 있다.

 

(내일, 베드로후서 개론 3/3계속)

 

Maranatha!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아둘람복음공동체ㆍSNS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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