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요한복음 8:3-9)
[돌을 든 자들이여 들으라!]
군대 조직의 상급자들이 하급자들에게 기압을 줍니다. 그런데 '2347...'로 나가는 1990년대 '가을군번'을 부여 받은 내가 군인이었을 때는 원산폭격이라는 무지무지하게 고통스러운 기압이 빈번했었습니다. 이전에는 더욱 심했습니다.
원산폭격은 두 손을 등 뒤로 잡고 머리를 바닥에 거꾸로 박는 기압입니다. 악질 고참병은 작은 돌을 놓고 그 위에 머리를 박게도 하고, 작은 치약 뚜껑 위에 박게도 합니다. 한참 하다보면 치약 뚜껑 움푹 패인 그 곳에 피가 고이기도 합니다. 이런 고약한 짓하는 고참이 참 많았습니다. 상명하복이 강한 군대의 특수환경만 아니었더라면 몇 번이고 두들겨 팼을 것입니다. 그 땐 그랬습니다. 정수리의 고통이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필 원산폭격일까요? 6.25전쟁 때 미국 공군기들이 원산 일대를 '융단폭격'으로 초토화시켰습니다. 바닥에 융단을 깔 듯 거의 빈틈 없이 집중적으로 폭탄을 퍼부어 대는 것이 융단폭격입니다. 모든 시설물과 생명이 완전히 파괴됩니다. 적군 1개 사단이 있는 그 현장에 아군 1개 소대가 숨어 있다면 융단폭격에 우리 아군도 희생을 면치 못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무리 잘 나가던 정치인도 그가 죽일 놈이라는 거짓된 융단폭격을 언론이 퍼부어대면 온 국민의 공분을 사는 공적으로 돌변합니다. 공공의 적이 되는 것이죠. 이와는 반대로 거짓을 진실로, 가짜를 진짜로,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만들어 언론에서 융단폭격을 가하듯 왜곡 보도하면 그것이 또한 왜곡이 아닌 진실이 되고 진짜가 되어버립니다.
융단폭격에 살아 남을 생명이 없습니다. 보수 언론과 진보 언론이, 보수 정치세력과 진보 정치세력이, 사측과 노조측이, 여당과 야당 등이 서로를 향하여 융단폭격을 해대면 양쪽 모두가 죄인 중의 괴수가 됩니다. 대통령에게 융단폭격을 해대면 대통령도 죄인 중의 괴수가 됩니다. 이것 저것 가리지 않고 몽땅 덮어씌우니 세상 죄를 홀로 다 지은 게 됩니다. 하물며 대통령 아닌 사람이겠습니까? 죄인 중의 괴수, 괴수 중의 상괴수가 되는 건 불 보듯 뻔 한 일이요, 자명하다 못 해 이미 과거가 되어어린 듯 오차 없이 명확한 팩트가 됩니다.
이건 아닙니다. 이성의 마비입니다. 나라를 생각하는 사람은 없고, 정권의 야욕을 생각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야욕이 마치 전염병처럼 번져나갑니다. 중국 시진핑주석과,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대통령은 말 할 것도 없고, 한국도 대통령 중임제니 연임제니 하는 개헌 이야기가 나오면서 멈추지 않는 기차로 갈아타려는 모양새가 구체화 되어 가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제왕적 대통령제, 말하자면 독재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를 토로하기도 합니다.
그가 누구든 손에 권력을 넣은 절호의 기회를 잡게 되면 그것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별의 별 이유, 핑계 다 대면서 한시적인 인간 세상의 썩어 없어질 권력을 평생 가져갈 것 처럼 움켜 잡으려고 용을 씁니다. 그래서 걸림돌 될 만한 것들을 처단하기 위해 말의 융단폭격을 해댑니다. 융단폭격을 쏘아대는 그들 중 누구도 정당하지 못함을 세상이 알 만큼 다 압니다. 그러나 막상 자신들은 모릅니다. 돌을 던져도 될 만큼 자기들은 깨끗하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생각이 그들의 마음을 상실하게 하며 눈을 어둡게 합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자리에 머물고 있는 상태입니다.
권력과 정직과 도덕적 정결함은 같이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권력을 손에 넣으면 정직한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도덕적으로 무흠하다고 생각합니다. 돌에 맞을 짓 같은 건 해본적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참된 도리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고, 바른 이치 안에 있다고 생각하며, 어떤 명제에도 논리의 법칙에 맞는 지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뿐만 아니라 언제나 정답을 낸다고 생각합니다. 돌에 맞아야 할 사람들이 돌을 쥐고 떼를 지어 덤벼드는 형국입니다.
지금 전 세계가 그렇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발전적 정책들도 '그릇되다' 하고, 그릇된 정책들도 '옳다옳다' 합니다. 정치권이, 언론이, 세상이, 구토증나게 굽니다. 융단폭격은 대죄(大罪)입니다. 시궁창 냄새가 많이 납니다.
요한복음 8장, 예루살렘 성전 마당의 예수님 앞에 끌려 온, 초라하고 슬프고 부끄럽고 두렵고 괴롭고 나약한 한 여인의 모습이, 이 시국 상황에 오버랩 됨을 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하며, 무슨 까닭이라고 말해야 할까요?
율법 준수주의자들로 대중의 존경을 받는 권위 있는 바리새인들이 한 여인을 예수님 앞에 끌고 왔습니다.
그 여인은 어쩌다가 간음하던 현장에서 체포되었을까요? 현행범이라면 그 여인의 상대 남자는 어찌 되었는지 왜 설명이 없는 것일까요? 그들이 파놓은 함정에 여인이 걸려든 것은 아닐까요? 예수님이 사랑과 용서를 가르치며 다니니, "이 여인도 용서하라"는 말을 하게 하려는 노림수였을까요? 그렇게 되면 모세의 율법에 대한 정면 도전이 됩니다. 예수를 처벌할 기회가 생기게 됩니다. 그렇다면 그 여인을 끌고 온 게 정말 예수를 잡으려는 함정이었을까요? 아니면 여인을 데리고 온 바리새인들의 말대로 돌에 맞아 죽어야하는 진짜 간음 현행범이었을까요?
“모세의 율법에는 이런 범죄자를 돌로 쳐 죽이라 하였는데 당신은 어찌하겠소?”
율법 준수주의 자들의 당당한 질문이 나왔습니다. 예수님은 한동안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습니다.
“당신들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시
오.”
"죄 없는 자?"
그가 누구일까요? 누가 먼저 돌을 던질 수 있을까요? 고매한 인격과 신앙으로 무장된 존경 받는 바리새인들도 조용히 돌을 떨어뜨리고 하나 둘 그 현장을 떠났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죄가 없겠냐는 것입니다. 잘 못을 들춰내 융단폭격을 쏟아 붓는 대한민국의 언론인들과, 정치인들과, 고위직 공무원들과, 사업가들과, 학자랍시고 목을 곧게 세운 교수들과, 예수의 제자라는 목사들과, 고상한 예술인들과, 상인들과, 직장인들과, 거리를 덮은 각계각층의 그 누구인들 과연, "나는 죄 없소이다~" 하며 먼저 돌을 던질 인간이 있겠냐는 것입니다.
나는 '단 한 사람도 없다'고 단언합니다. 절대로 없습니다. 생각해 볼 필요도 없습니다. 돌을 든 자들은 돌에 맞을 수 있습니다. 칼로 일어선 자 칼로 망하고, 찬탈한 자는 찬탈 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말 합니다.
"돌을 든 자들이여 들으라!"
Maranatha!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아둘람복음공동체.SNS선교사>
YOUTUBE : '아둘람큐티콘서트' 검색
홈페이지 :www.adullamch.org
카스 : story.kakao.com/makarios818
네이버포스트 : naver.me/5xh1RnwG
네이버블로그 : naver.me/GYkHVQq8
트위터 : https://twitter.com/makarios818?s=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