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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르우벤이여]-1/2

현명인목사 2017. 4. 28. 06:45

"르우벤아 너는 내 장자요 내 능력이요 내 기력의 시작이라. 위풍이 월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다마는 물의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하지 못하리니 네가 아비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음이로다.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창세기 49:3-4)

 

[오, 르우벤이여]-1/2

 

인간이 본질적 죄인이요, 존재적 죄인이요, 나아가 실제적 죄인임을 누구라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간혹 '나는 죄 없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생각이 없거나, 뇌세포가 하얗게 탈색된 사람이요, 형상은 사람이지만 사실상 사람이 아닙니다. 죄 없다는 말은 드러나지 않은 죄가 내 안에 가득히 차고 넘친다는 말과 같습니다. 어쩌면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그 증인일 수 있습니다.

 

인간이 악하다는 것과 그래서 죄 속에서 살아간다는 이 엄연한 사실은 속일 수도 없고 모른다 할 수도 없습니다. 헌데 기막힌 죄악, 상상 이상의 죄악을 저지르는 인간이 있습니다. 짐승은 본(本)도 없고 호적이 없으니 촌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성(性)에 있어 암컷과 수컷으로 구분될 뿐이라서 성으로 관계 지어지는 데 하등 윤리적인 걸림돌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불륜이 도를 넘으면 짐승 또는 개라 하며, 한 발 더 나아가면 짐승만도, 개만도 못하다고 지탄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야곱의 장남 르우벤은 그러므로 짐승만도 못합니다. 아버지의 아내 4인 중 한 명인 빌하의 침상에 올랐습니다. 야곱이 지극히 절제된 표현으로 아버지의 침상에 올랐다고 한 것이지, 직설적으로 하면 서모(庶母)를 시체 말로 성폭행한 짓입니다.

 

아버지의 아내를, 아버지의 아내인 서모를 성폭행한 장남 르우벤의 그 추악한 얼굴을 아비의 입장에서 두 번 다시 볼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야곱은 그 패륜아를 극심한 고통과 치욕 속에서도 내쳐버리지 않고 무거운 침묵으로 인내하며 살았습니다.

 

야곱이 죽기 전에 열 두 아들에게 한 사람씩 축복기도 할 때, 그래도 장남이라고 맨 먼저 르우벤을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그로부터 5백 여 년 후에 가나안 정복을 앞두고 지금의 요르단 땅에서 저 아래 요단강과 그 너머 가나안 땅을 바라보며, 곧 죽게 될 모세가 이스라엘 12지파 각각에게 마지막 축복기도를 하였습니다. 르우벤 지파에게는 야곱이 르우벤에게 직접 기도한 내용과 거의 일치합니다.

 

야곱의 기도는 이렇습니다. "르우벤아, 너는 내 장자요 내 능력이요 내 기력의 시작이라. 위풍이 월등하고(격조와 품위가 높고), 권능이 탁월하다마는 물의 끓음 같았은즉(걷잡을 수 없이 충동적, 홍수 같음) 너는 탁월하지 못하리니 네가 아비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음이로다.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창49:3-4).

 

모세의 르우벤 지파에 대한 축복기도는 이렇습니다. "르우벤은 죽지 아니하고 살기를 원하며 그 사람 수가 적지 아니하기를 원하나이다"(신33:6). 같은 맥락의 두 사람의 기도는 축복인지 저주인지 애매모호합니다.

 

애매모호, 어정쩡한, 하나마나한 축복, 그리 보입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엄청난 축복입니다. 르우벤에게 엄청난 은혜입니다. 장남의 아버지의 아내 강간은 아버지로부터, 그 가족으로부터의 완전한 단절이 마땅한 파렴치요 패륜입니다. 돌 맞아 죽을 죄입니다. 짐승만도, 개만도 못한 이런 패륜은 내가 야곱이었어도, 당신이 야곱이었어도, 용납하지 못하였을 터입니다. 아니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은, 어디 가서 말도 못 할 수치요 민망함의 극치입니다.

 

아버지 야곱과 그 민족의 지도자 모세의 르우벤에 대한 축복기도는 그래서 은혜로운 배려요 관대함의 극치라는 것입니다. 르우벤을 품어 주었으니 여전히 가족입니다.

 

우리가 이쯤에서 생각 할 것은 르우벤의 그 짐승만도 못한 모습이 곧 우리의 모습이요, 나의 모습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르우벤의 파렴치한 패륜적 죄를 도마 위에 놓고 칼질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죄와, 아니 나의 죄와 르우벤의 죄의 농도가 어떠한지 비교 분석 할 이유도, 따질 이유도 없습니다. 그렇게 해 봐야 도토리 키재기요, 조삼모사요, 도긴개긴이요, 오십보백보 입니다. 그 밥에 그 나물이요, 그 놈이 그 놈이란 얘깁니다.

 

우리가 구원 받은 이 후에도 세상에서 발을 빼내지 못하고 습관적으로 죄를 짓습니다.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다는 성경구절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한 쪽의 모순적 쳇바퀴를 굴립니다. 때로는 가슴을 치며 참회 하면서도 반푼이 같은 나 같은 죄인을 하나님이 또 다시 용서 해 주실까를 의심하니 또 한 쪽의 모순의 쳇바퀴가 굴러갑니다.

 

마음에는 주님을 생각하고 육으로는 죄를 짓습니다. 회개의 자리에 앉아 용서 받을 수 있을까를 의심합니다. 그래서 모순이라 이름하는 양쪽 바퀴는 오늘도 굴러갑니다. 내가 하나님이라면 르우벤과 다를 바 없는 죄이이요, 그것도 상습범이요, 악하고 끔찍하고 파렴치한 죄인에게 절대로 관대할 수 없을 것 같아서입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하나님의 그 크신 은혜에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내일 2/2계속). 할렐루야!

 

<아둘람복음공동체_✞SNS선교사>

 

Maranatha!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SNS를 통해 2014년 5월에 시작 된 큐티는 <아둘람큐티콘서트>라는 이름의 영상으로 제작 되어 온 열방에 복음을 전파합니다. 전도목적과 믿음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 위한 신앙교육용 큐티로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당신도 SNS복음선교사 입니다.

 

'나의 맘 받으소서 -어노인팅-'

https://youtu.be/vs5zZXuUf1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