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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살아야 하는가?]

현명인목사 2017. 12. 17. 07:55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빌립보서 1:20)

 

[왜 살아야 하는가?]

 

세상에 태어났어도 이성에 의한 언행심사를 못 한다면 동물적 본능에 의한 단순 욕구만을 충족시켜 나갑니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 것은 이성적 시기가 도래되지 않은 유아들도, 모든 짐승들도 먹고 마시는 기본적인 욕구 충족에 대한 자각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간과하기 쉬운 주제일 수 있지만 이것이야말로 모든 생명체에게 심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잘났든 못났든 상관 없이, 크던 작던 상관 없이, 남녀노소 상관 없이, 빈부귀천 상관 없이, 그 누구라도 어떤 짐승이라도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은 식음료를 통해 에너지를 공급 받아야 합니다. 곧 살기 위해 먹어야 한다는 기본적 자각능력이 하나님의 은혜의 씨앗으로 각 생명체에게 심기워졌다는 얘깁니다.

 

가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먹거리가 사람들의 시선을 맛있게 자극합니다. 시신경을 통해 수집된 먹거리 정보는 두부처럼 물컹물컹하고 호두 알맹이처럼 쭈글쭈글한 주름이 있는 분홍색의 물질로 향합니다. 그 물질의 무게는 체중의 2%에 불과하지만 심장에서 분출되는 피의 15%를 소비하며, 인간이 호흡하는 산소의 20~25%를 사용합니다.

 

인체 부위의 1천억 개 정도의 뉴런과 그것들이 서로 연결되는 1천조 개의 시냅스로 이뤄진 고도의 복잡한 통신망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고작 냉장고 조명을 켜는 정도의 에너지로 방대한 외부의 정보를 인식해 기억으로 저장하고, 사고하며, 인간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이 신체 부위가 어디인지, 이 정도 말했으면 눈치 채지 못할 사람은 없습니다. 바로 소우주라고 불릴 만큼 복잡한 인간의 '뇌'(腦)입니다.

 

그런데 뇌에 저장된 이 정보가 심각한 오류를 불러옵니다. 살기 위해 먹는 것이 아닌, 먹기 위해 산다는 명령어로 변질됩니다. 먹다보니 더 맛있게 먹으려하고, 더 맛있게 먹으려하니 맛 집 찾아 3만리 여행을 떠납니다. 그것이 어느새 삶의 이유가 됩니다. 맛집이라도 발견하면 신대륙이라도 발견한양 호들갑에 난리도 아닙니다. 먹기 위해 사는 풍조가 이 세대입니다. 음식만? 아닙니다. 재물과 권력과 정욕 등의 모든 것을 포함합니다. 갖기 위해, 얻기 위해, 차지하기 위해, 쌓아 두기 위해 삽니다.

 

오류를 불러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욕심'입니다. 오감을 통해, 경우에 따라서는 육감을 통해 정보를 인식하여 기억으로 저장하고, 이를 사고하여 인간 정체성을 결정하게하는, 소위 소우주라고 불리는 인간의 '뇌'(腦)는 단순하게 주입되고 저장된 작은 바이러스, 그러나 매우 치명적인 '욕심'이라 불리는 바이러스로 인하여 망가지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창조된 피조물로써의 본질을 망각하는 단초가 됩니다. 본질의 망각은 사망입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의 소망이 오직 주님께 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지난날 그의 권위는 가말리엘 문하에서 율법의 엄한 교육을 받은 자랑스런 베냐민 지파 사람인 것과,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고, 나면서부터 로마시민권자였던 출생 배경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자로 택정함을 입어 <예수 그리스도의 종된 것>을 자랑스런 자신의 권위로 여깁니다(롬1:1).

 

자신을 당당히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소개하는 사도바울이,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하려 함이 자신의 기대와 소망을 따른 것이라고 선포하는 것은 자기가 왜 살아야 하는지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썩어 없어질 세상 소망이 아닌, 영원히 변치 않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간절한 그의 소망은, 율법을 통하여 구원 여부를 논하던 유대교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정면 대응했습니다.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답이 오늘 말씀 가운데 있습니다. 그 답을 풀어나가기 위해 때를 따라 먹고 마시고, 필요에 따라 화폐도 선용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존귀하게 하려는 그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이 오늘 나의 기대와 소망이 되지 않는다면 먹기 위해 살아가는 짐승과 다를바 없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그 누구도 하나님의 구속사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해도, 하나님을 부인해도, 모든 인류역사에는 구속사의 증거들이 삶의 실재로 나타납니다. 이는 곧 썩어 없어질 세상의 모든 것들은 결코 한 영혼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천하보다 귀히 여기시는 자기의 영혼을 세상 아래 두는 것은 가장 어리석고 미련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Maranatha!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아둘람복음공동체SNS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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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향을 향하네(김희보詞,김두완曲)',합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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