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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후서 1:9-10] [복음(福音) :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2

Adullam 2022. 6. 10. 06:32

[디모데후서 1:9-10]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복음(福音) :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2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 2장 1절에서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라고 말한 것은, 우리는 이미 영적으로 죽어있는 존재라는 것을 말하고자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면 영적으로 죽은 자입니다. 영적인 균형이 깨져있는 상태입니다.

인간의 행복은 오직 한 가지에 달려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 여부입니다. 관계의 회복은 세상 등지고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이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그분의 얼굴을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광 돌리기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교제해야 하고, 하나님 나라를 소망해야 하며, 기대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신” 이유입니다(딤후 1:9).

인간의 영혼은 소멸되지 않습니다. 두 가지의 실제적 가능성을 갖는 영원한 세계에서 살게 됩니다. 그 한 곳은 이루 말 할 수 없는 기쁨과 즐거움, 환희와 행복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또 한 곳은 온갖 형벌의 고통이 있고, 죽지 않는 구더기와 징그러운 벌레들이 있습니다. 내장이 뒤집어지고 썩어질 정도의 역한 냄새로 가득차 있으며, 절대로 꺼지지 않는 유황 불 못이 있습니다. 이 곳은 빠져 나올 수 없는 절대절망 그 자체입니다.

사람이라면 자신의 육신에 머물고 있는 자신의 영혼이 소멸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믿어야 합니다. 그 영혼이 언젠가 하나님 앞에서 몸소 행한 일들에 대해 해명하게 될 거라는 사실도 망각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은 책임감을 갖고 있는 존재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과 재능을 무엇을 위해, 어떤 동기와 목적으로, 어떻게 활용 했는지 하나님의 심판의 날에, 낱낱이 고하게 될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 때 어떤 판결이 날 것인가를 미리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법정에 선 자들이 가장 원하는 무죄 판결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나의 구세주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그 분이 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사실과,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셨다는 사실을 믿으면 됩니다. 그 믿음이 무죄로 판결나게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신다는 약속을 창조주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이 약속의 책임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이 약속의 말씀이 내게 실제 되는 것은 오직 믿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그 길은 육으로 살아 있는 동안 믿음으로 이르게 됩니다. 진리를 향한 길입니다. 진리를 향한 그 길 끝에 생명이 있습니다. 곧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 길을 향한 첫 발걸음은 믿음을 통해 내딛게 됩니다. 육의 죽음을 지나 생명으로 나아가는 진리의 길,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만이 불변의 소망이 되십니다.

세상에는 많은 종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종교들에는 공통적으로 궁극적인 소망이 결여 되어 있습니다. 인간 안에 내재되어 있는 결정적 모순을 다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된 것이 마음"이라 하였고 "이를 누가 알겠느냐"고 했습니다(렘 17:9). 확실한 것은 인간은 이 답을 절대로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 가장 관대한 존재가 인간입니다. 한 예로, 똑 같은 문제와 사건 사고를 놓고 상대를 비판하면서도 자신은 변호하고 합리화 시킵니다. 정직하지 않음과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는 증거가 이러한 단편적 예를 비롯해 허다합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반면에 인간은 자신의 실제 모습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변화를 거듭해 나갈 수도 있습니다. 포악한 자가 온유한 자로, 이기적인 자가 이타적인 자로, 탐욕 가득한 자가 관대한 자로, 정욕에 물든 자가 성인군자로, 인본주의 자가 신본주의 자로 변화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십자가 복음입니다. 복음은 그 사람의 일면 정도만을 바꾸는 게 아니라 그의 모든 것을 통째로 바꿔버리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복음 곧 하나님의 능력을 거부하게 되면 그에 따른 댓가를 치르게 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악한자의 길이 형통하며 반역한 자가 다 평안함은 무슨 까닭인지”(렘 12:1), “누가 이런 인간의 마음을 아는지” 하나님께 여쭈었습니다(렘 17:9). 이에 대하여 하나님은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렘 17:5).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시며 공의로 판단하신다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나타내는 말씀입니다(렘 11:20).

따라서 사람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셨다는(딤후 1:9)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는 인간이 구원받아야 하는 존재임을 인지하는 것에서 부터 시작됩니다. 그 시작은 하나님의 품 안에서만 누리는 참된 평안과 안식으로 이어지고,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름 받게 된 존재로 돌아오게 합니다. 그리고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딤후 1:10)으로 귀착됩니다.

MARANATHA !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
<아둘람복음공동체?현명인목사>
Adullam Ministry &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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