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이에서 다툼이 나는 줄 앎이라. 주의 종은 마땅히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훈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그들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그들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 바 되어 그 뜻을 따르게 하실까 함이라
[복음(福音) : 진리를 알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2
열매를 맺기 위해 강론하며 가르치는 복음의 주요 주제는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과 같고, 교회의 존재 목적과 같습니다. 곧 모든 성도는 부활 신앙을 소망하면서 선교사적 존재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선교 교육에 대한 범위의 제한을 두어서는 안 됩니다. 온 세상을 복음화 할 수 있도록 훈련하는 성경적인 훈련 과정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교육’인 동시에 ‘주님의 지상 명령을 따르게 하는 단초'가 되기 때문입니다.
목사는 기독교의 본질, 곧 복음의 본질을 알아야 합니다. 복음의 방향성도 바르게 알고 가르쳐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수술을 받아야하는 암 환자에게 통증을 없애주는 몰핀 주사만 놔주고 집으로 돌려 보내는 돌파리 의사와 같습니다. 결국 환자의 병세가 더욱 악화되는 것처럼 성도의 믿음은 흔들리고 시험에 들게 됩니다.
위의 내용은 복음의 가르침이 무엇이고,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가르친 것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성도된 입장에서도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의사를 찾아온 환자의 태도처럼, 영적인 문제를 갖고 복음 앞에 선 태도에 관한 것입니다. 구원의 은혜를 수동적 입장에서 값 없이 받았다면, 구원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신앙적 태도, 곧 말씀을 받아들이고 말씀대로 살아가는데 있어서는 능동적으로 임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복음이 제시하는 삶과 죽음에 대한 문제, 즉 기독교의 기본 교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떤 영적치료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성도들은 바르게 알아야 하고, 알게 된 것을 믿어야 합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네 믿음대로 될 지어다!”
그래서 우리는 복음을 깊이 있게 논하기 전,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그 안에 사람을 지으신 목적과 지음 받은 인간의 불순종에 대해 먼저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 오신 메시아의 출현을 이야기해야 하며, 어디에서 와서, 무엇 때문에 살고, 어디로 가는지를 논해야 합니다. 그러나 어느 특정 부분만을 이야기하는 복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복음은 전체적 관점으로 심오하게 다루어져야 합니다.
사람들은 의도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하나님께서 인류를 향해 갖고 계신 보편적인 목적에 맞서는, 아래의 예시와 같은 일종의 방어막을 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해외든 국내의 인적이 드문 곳이든, 모두가 다 선교에 나서야 한다고 말씀 하시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나는 선교의 소명도 없을 뿐만 아니라 내 믿음 하나 지켜내는 것도 어렵고 버겁다."
즉 선교는 교회가 벌이는 활동 가운데 하나일 뿐이며, 택함 받은 이들이나 감당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지상 과제를 무시하는 행위이며,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폄회하고, 교회의 존재 목적을 왜곡 변질 시키는 행위와 다를 바 없습니다. 곧 교회 된 나 자신의 존재를 무가치한 것으로 여기는 것과 같습니다. <계속>
MARANATHA !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
<아둘람복음공동체?현명인목사>
Adullam Ministry & Church
www.adullamch.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