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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주간큐티/누가복음 22:61-62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라]-2/4

Adullam 2022. 4. 13. 08:07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아 나는 네가 하는 말을 알지 못하노라고 아직 말하고 있을 때에 닭이 곧 울더라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누가복음 22:61-62)

[시선(視線)]-고난주간2/4

예수님을 잡으러 왔었던 사람들 중 말고라 하는 사람의 귀를 칼로 내려칠 정도로 담대했던 제자는 베드로였습니다(요 18:10), 그러나 사태가 심각하게 돌아가자 그 상황을 지켜보는 무리의 한 사람으로 변해있었습니다. 불에 일렁이는 그의 그림자에서조차 제자의 모습은 발견 할 수 없었습니다.

주님께 소명 받은 종이라도 주님을 향한 뜨거운 믿음이 항상 한결같지만은 않습니다. 죽도록 충성을 다하겠다는 그 결심도 늘 일관 되지만은 않습니다. 멀리서 찾을 것도 없이 필자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때로는 세상의 일을 생각하면서 근심과 두려움에 떨기도 하고, 배고픔과 굶주림과 질병의 염려에 빠지기도 합니다. 다사다난한 인생의 광야를 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탐욕을 불러 일으키는 상황 앞에서 심하게 갈등하기도 합니다. 세상 권세의 자리를 앞에 두고 자기 합리화를 통해 그 자리를 덥석 물어버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일까요? 멀찍이 서서 자기의 신분을 감춘 채 불을 쬐고 있는 베드로의 심정이 이해가 되기도 했습니다. 아직 제가 세상때 다 벗겨지지 않은 못나고 무익한 종이기에 그럴 것입니다.

기대와 현실은 다릅니다. 이 세상의 수 많은 성도들이 믿음을 뒤로 한 채 자기의 현재 처한 상황에 휘둘릴 때가 많습니다. 때로는 기독교인인 것을 감추거나 침묵으로 일관하기도 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기독교인임을 과도히 드러내어 바리새인들과 같은 외식에 빠지기도 합니다.

베드로는 자기를 추궁하는 그들에게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否認)했습니다. 우발적 부인이 아닌 의도적인 부인이었습니다. 우리도 의도적으로 주님의 시선을 회피하기도 합니다. 처한 상황과 처지에 따라 신앙의 노선을 달리하기도 합니다.

주님을 세 번 부인한 후 베드로의 눈과 주님의 눈이 마추졌습니다. 함께 불을 쬐며 베드로를 추궁한 사람들의 시선은 정죄와 경멸이었지만, 주님의 시선은 이해와 긍휼과 용서였습니다.

세상에 처한 상황을 먼저 바라 보게 되면 우리도 주님을 부인하고 그 분의 시선을 외면한 베드로처럼 변절자의 자리에 서게 될 수 있습니다. 졸지도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는 주님의 용서와 긍휼의 시선이 언제나 우리를 향해 있다는 것을 그래서 우리는 늘 상기하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요일 4:9)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며, 진리가 생명이 되어 오신 그 분의 사랑을 기뻐 찬양하는 우리가 되길 원합니다.

<계속>

MARANATHA !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
<아둘람복음공동체?현명인목사>
Adullam Ministry &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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