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디모데후서 1:12 [복음(福音) : 인생의 시금석(試金石)]-2

Adullam 2022. 4. 6. 07:21

[디모데후서 1:12]
“이로 말미암아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복음(福音) : 인생의 시금석(試金石)]-2

믿음의 결단이 없는 것은, 목이 말라 야곱의 우물을 찾는 것과 같습니다. 순간의 갈증이 해소 되면 우물 곁을 떠나가지만 또 다시 찾아오는 목마름으로 인하여 우물 주변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에 우리는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다시는 목마르지 않을 것이라”고 하신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믿음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교회를 다니면서 말씀을 듣고, 찬송을 부르고, 궂은 일 마다하지 않고 헌신합니다. 이른 아침이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기도도 합니다. 그런데 그런 그에게 누군가가 와서 죄를 얘기하고, 심판을 얘기하고, 주의 다시 오심을 얘기하고, 지옥을 얘기 하면 그의 마음 속에서 두려움이 싹트기 시작합니다. '왜 나에게는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을까?, 지금 죽으면 천국을 못 갈 것 같다는 생각은 왜 자꾸 드는걸까? 오랫동안 교회를 다녔다는 사람들 가운데는 이와 같은 두려움을 토로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한 친구의 집에 자주 놀러가는 친구가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친구의 아버지를 자주 뵙게 되었습니다. 친구의 아버지이기고 하고 자기에게도 잘 해주시는 것이 감사하기도 하여 그를 ‘아버지’로 호칭하기로 했습니다.

"아버지!' ... 그러나 그리 편하지만은 않은 어색한 아버지였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 분에게서 태어나지 않아 생긴 거리감과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진짜 나의 아버지가 되기 위해서는 그 분으로부터 태어나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진짜 부자관계가 성립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이유는 예수님을 믿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났기 때문이고, 하나님의 영으로 인쳐졌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수십년 교회를 다녀도 친구의 아버지를 부르는 것처럼 어색하기만 할 뿐입니다.

여러분도, 물과 성령으로 거듭났다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것입니다. 그러나 호칭 정도의 수준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다면 친구의 아버지를 부르는 것과 같은 수준일 뿐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나지 못하면 수십년 교회를 다녀도 두려움은 떠나지 않습니다. 두려움에는 심판이 따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아직 형벌의 심판에 속해 있다는 뜻입니다.

한 여인이 우물가를 찾았습니다. 그 여인이 있는 우물가에 가신 주님은 그 여인에게 다시는 목마르지 않을 거라는 말씀하셨고, 그 물을 달라고 하는 여인에게 느닷없이 남편을 불러오라고 하셨습니다(요 4:15-16) 하지만 예수님은 그녀의 여섯 번 째의 남자가 진짜 남편이 아닌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면 왜 그러셨을까요? 음란한 동거를 하고 있는 숨겨진 죄악들을 하나님 앞에 내어 놓고, 마음을 찢어 죄와의 동거를 청산하라는 뜻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죄 용서의 은혜가 지금 네 앞에 있으니, 이제 그만 죄와의 관계를 청산 하고, 너의 마음을 찢어, 마음 깊은 곳에 겹겹이 쌓인 죄악들을 다 꺼내 던져 버리라. 죄와의 관계를 이제는 청산 하라."

우리는 죄와의 관계를 청산해야 합니다. 이 거룩한 청산작업은 매일 매일 이루어져야 합니다. 순간순간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러도 죽음 뒤 당면하게 될 심판에 대한 두려움은 결코 떠나지 않습니다.

<금요일, 계속>

MARANATHA !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
<아둘람복음공동체?현명인목사>
Adullam Ministry & Church
www.adullamch.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