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질서의 극치, '사망']
출생은 기쁨이고 복입니다. 마이너스가 아닌 플러스입니다. 그래서 아기가 태어나면 기뻐하며 축하해줍니다. 백일이 되면 조촐하게 잔치를 하고, 돌이 되면 그 보다 크게 잔치를 합니다. 생일이 되면 선물을 주고 함께 식사를 하며 그 날을 기념합니다.
가장 안전한 엄마의 자궁에서 성장하여 무척 힘들게 세상에 나옵니다. 어찌나 힘들고 놀랍던지 혼신의 힘을 다해 울어 댑니다. 자연분만일 때 그렇습니다. 엄마가 힘든것 만큼은 아니겠으나 그래도 그 아기에게는 무척이나 힘든 일일 것입니다.
첫 아이를 출산한 엄마는 핏대를 세우며 소리를 질렀던 고통의 시간을 잊고 또 다시 둘째 셋째를 출산합니다. 자식들의 자식인 손자 손녀들이 나고, 증손자가 나고, 고손자가 납니다. 질서입니다. 질서는 아름답습니다. 위아래가 분명합니다.
모든 사람의 나이는 늘어갑니다. 늘어갈수록 더 많이 경험하고 더 많이 알아집니다. 그래서 후대에게 전해집니다. 이처럼 세월이 흐르면서 위로부터 아래로, 늙은 순서로, 삶의 연륜에 비례하여 차례대로 사망하면 생명의 질서는 완벽합니다. 이 모든 것이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습니다.
그러나 사망은 무질서의 극치입니다. 위아래 순서가 막 뒤엉켜 손자가 먼저 죽고, 늙은 할아버지는 살아 있습니다. 엄마가 아직도 건강한데 어린 자식이 먼저 죽습니다. 세상에 온 순서가 있는데 저 세상으로 가는 순서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마치 죽음에 순서가 있는 것처럼 생각하면서 삽니다. 자신은 죽을 날이 아직 먼 것처럼 말합니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다녀오겠다고 나간 남편도, 학교 다녀오겠다고 나간 자식도, 시장 다녀오겠다고 나간 엄마도, 저녁에 술 한잔 하자고 친구들과 약속을 했어도, 약속 장소에 거의 다 와간다며 전화를 했어도 이것이 마지막 목소리고 마지막 모습일 수 있습니다.
사람에겐 '확실히 정해져 있는 계획'이란 게 있을 수 없습니다. 반드시 이루어질 거라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저 사는 동안의 모든 일은 예정일 뿐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이루어질 일이 한 가지 있는데, 그건 사람이 죽는다는 것과 죽은 뒤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늘에 닿을 문명으로도, 세상을 호령하는 권력과 지식으로도, 사람의 생각까지 통찰하는 지혜로도, 엄청난 재물로도, 철학적 깊은 사유로도 해결 못하는 한 가지는 바로 '사망'입니다. 그래서 사망은 인간에게 가장 거대한 두려움이며, 불가항력의 능력이자 의문이며, 불가피한 종말입니다.
극빈의 고통으로 살아도 맞게 되는 죽음, 산더미처럼 돈을 쌓아놓고 살아도 막지 못하는 죽음, 왕자나 공주처럼 고귀하게 살아도 찾아드는 죽음, 별처럼 빛나게 살아도 스며드는 죽음, 미련한 바보로 살거나 지혜롭게 살아도 다가오는 죽음, 천하 모든 생명에게 예외가 적용 되지 않는 죽음, 그래서 성경은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라고 선언하였습니다.
세네카는 ‘우리는 항상 생명이 짧음을 한탄하면서 마치 생명이 다할 때가 없는 것같이 날 뛴다’고 하였습니다. 마치 죽음과 무관한 것처럼 날뛰는 인생, 그래서 한 번 죽는 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것 일 뿐만 아니라, 죽음 후에는 심판이 있다고 성경은 엄숙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오판하고도 오판인 줄 모르는 인간의 심판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누구도 이 심판대 앞에서 빠져나갈 수 없습니다.
속수무책으로 갑자기 찾아온 죽음과의 조우는 공포이자 허무이며, 비탄이고 절망입니다. 생명의 짧음을 다 알면서도 죽는 날이 없는 것같이 날 뛰면 예외 없이 극도의 공포로, 대책 없는 허무로, 최악의 비탄으로, 절대절망으로 개인의 종말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렇게 산 것을 사람처럼 산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아뇨! 절대 사람처럼 산 것이라고 말 할수 없습니다.
일의 시작도 중요하지만 일의 끝이 중요하다고들 합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개인의 종말을 생각하며 살아 가는 것입니다. 죽음은 살아 있는 이 시간에 준비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방법은 유일합니다. 두 서너가지라도 되면 그 중 이런 방법을 택해 보라고 권면해 보겠지만, 준비 방법은 유일합니다. 그런데 유일한 방법을 가르쳐줘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손사래를 칩니다. 현재 살아있는 자신과 미래의 죽음과의 거리를 까마득한 거리로 보기 때문입니다. 단언하건대 그런자에게 죽음은 갑자기 임합니다.
준비할 수 있는 방법, 곧 '길'은 하나입니다. 그 길이 진리입니다. 그래서 진리는 하나입니다.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신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 뿐입니다.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습니다. 이게 전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게 완전한 준비입니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사람이 만든 가짜 신을 믿겠습니까?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을 믿겠습니까? 이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하면 당신은 하나님 앞에 교만한 자입니다. 미련하고 어리석은 자입니다. 당신의 머리채를 사단이 움켜 쥐고 있는 중입니다. 더 이상 이런 인생을, 이런 불쌍한 삶을 살지 말고, 속히 마음을 찢어 회개하고, 세상에서 돌이켜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께로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요엘 2:13)
MARANATHA !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
<아둘람복음공동체?현명인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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