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의 가능성, 상향의 가능성]
사람은 저마다 비교하는 습관을 갖고 있고, 크고 많은 것이 성공이라는 가치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이 가치관에 익숙하다보면 작은 교회, 개척교회, 성장 못하는 교회 목회자는 주눅이 들고 죄인 된 심정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패배자라는 자괴감으로 통증이 오기 시작합니다.
저의 경우는 ‘이름 없는 목사가 되어도 좋다. 최선을 다하자’, ‘최선의 결과는 교회의 주인이신 주님께 맡기자’, ‘목회 평가는 그날 주님 앞에서 받자’, ‘유명 신드롬, 대형 신드롬에서 벗어나자’라며 저 자신을 타이르면서 엎드립니다. 그리고 ‘포기하지 말자. 한발짝도 좋으니 매일매일 앞을 향해 걷자. 걷기 힘들면 기어서라도 가자’라며 선한 싸움과 함께 자신을 담금질 해 갑니다. 그러나 정말 쉽지 않습니다.
목사는 진리만을 붙잡고 의지하고 가르치지만 때론 자의식에 빠져 '변질'이라는 이름의 문패가 달린 문지방을 넘기도 합니다. 하지만 변질만큼 좋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바로 '탈진'입니다. 목사의 탈진은 그 어떤 질병보다 무섭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불의 사자였던 엘리야 선지자도 탈진에 빠졌을 때 깊은 숲속으로 도망쳤고 하나님을 향해 죽기를 한탄하는 약자로 전락했습니다.
(왕상 19:4)"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최정상에 오른 성공자에겐 추락의 가능성이 있고, 절망적 실패자에겐 재기와 상향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문제는 어떻게 다루느냐에 있습니다. 성공도 잘 못 다루면 실패가 되고, 실패도 잘 다루면 성공이 됩니다. 이것은 나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하는 문제와 직결됩니다. 하지만 이에 앞서 나를 다루시는 분이 계시다는 사실을 먼저 인지해야 합니다. 나의 생사화복이 전적으로 그 분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일어선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며, 넘어진 자는 다시 일어 설 수 있다는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미쁘사 우리로 하여금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우리로 하여금 능히 그 시험을 감당할 수 있게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직 새 힘을 주시는 하나님만 의지해야 합니다.
(이사야 40:29-31)'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Maranatha!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아둘람복음공동체?현명인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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