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8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9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10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2
첫째,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기도는, 기도의 응답에는 '하나님의 때‘가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어떤 문제를 놓고 한 번만 기도해도 내가 원하는 시간에 딱딱 맞춰 응답 받을 수 있다면, 인내하며 기도할 필요가 없습니다. 집요하게 구할 필요도 없고, 찾고 두드릴 이유도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은 과도한 요구가 됩니다. 또한 사무엘 선지자의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하지 않겠다‘고 한 말도 과장된 표현이 됩니다.
그러나 주님은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의 때를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주님의 말씀대로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기도를 쉬지 않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응답의 때를 기다리면서 인내의 기도를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바른 마음을 가진 부모라면 철없는 자녀들이 요구하는 것을 무조건 다 들어주지 않습니다. 물론 요구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을 해주고 싶은 게 부모의 마음이지만,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라면 '자녀에게 정말 유익이 되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합니다. '어떻게 해 주는 것이 아이에게 좋을까' 하는 응답의 수준과 수위를 생각하면서 그 시기를 동시에 생각합니다. 응답의 시기는 응답의 수준과 수위 만큼이나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부모도 자기 자식을 향해서는 이러한데, 하물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은 어떠하시겠습니까?
(마태복음 7:11)“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요구하는 그것이 언제 우리에게 있을 때 가장 큰 유익이 되는지를 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때와 우리의 때는 다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사실을 믿고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기도를 쉼 없이 해야' 합니다.
인내로 기도하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1)우리의 신앙은 그 깊이를 더해가고, (2)우리의 인격은 주님의 완전하심을 닮아가며, (3)우리의 삶을 통해 복음을 입체적으로 증거 하는 믿음의 열매들이 맺혀지게 됩니다.
역대 최고 수준의 스피드와 테크닉과 방어술을 지녔다고 평가받고 있으며, 사상 최초로 5체급을 50승 무패로 제패한, ‘플로이드 메이웨더’라는 프로 복싱선수가 있습니다. 가장 많은 대전료를 받고 있는 메이웨더는 복서로써의 재능이 아닌, 자신의 노력을 평가해 달라는 말을 인터뷰 할 때 자주 하곤 합니다. 자신의 승리는 재능이 아닌 땀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최고 조각가이자 화가였던 ‘미켈란젤로’는, 자신이 해왔던 노력에 대해서 안다면, 누구도 나에게 천재라는 말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끊임없는 인내의 훈련은 이처럼 귀한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어떤 열매도 인내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응답의 유익 보다는 크지 못합니다. 가장 귀하고 거룩한 이 유익의 열매는 경건의 훈련을 놓치지 않고 날마다 인내하며 기도하는 성도의 삶에서, 하나님의 응답을 통해 나타나게 됩니다.
인내하며 기도하는 한나에게 하나님의 대언자로 쓰임 받은 아들 사무엘을 주신 것처럼, 하나님은 인내하며 기도하는 자들에게, (1)하나님의 정하신 그 때에, (2)하나님의 방법으로, (3)하나님의 가장 선하고 좋은 것을, (4)하나님께서 친히 응답하여 주십니다. 그래서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기도의 영적인 절대시간'은 성도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둘째, 우리가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기도'의 대상은 성령으로 인침 받은 자들의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마태복음 7:11절의 말씀이 이를 증명합니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성령으로 인침 받은 자들의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은 모든 것의 주인이십니다. 하나님은 무엇이든 다 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분이시고, 벌레만도 못 한 우리를 인격적으로 대우해 주시고 불쌍히 여기시는 자비로우신 분이십니다. 또한 말씀을 통해서 약속하신 것들을 빠짐없이 지키시는 성실하신 분이십니다. 기도는 바로 그러한 아버지 하나님께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의롭다 칭함 받았습니다. 성령으로 인침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도 부여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살아가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즉 잠시 움켜쥐는 세상의 권세 따위가 아니고, 말도 많고 뒤 탈도 많은 권력 수준 따위가 아니며, 창고에 가득히 쌓아 놓은 금은보화가 나를 떠나 남의 소유가 되는 것과 같은 일장춘몽이 아닌, 영화로운 영원한 권세를 누리게 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는 영화롭고 영원합니다. 절대불변입니다. 그러나 이 권세는 이 땅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자들에게만 그 기회가 주어집니다. 교회에 다녀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성령으로 인침 받지 않으면 교회에 10년 출석을 해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 합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 하는 자들은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기도'를 하지않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보혜사 성령님의 역사는 저들에게 일어나지 않습니다. 저들의 삶에서는 말씀이 능력이 되어 나타나지 않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하나님을 향한 신뢰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기도'를 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특권이 아닙니다. 합당한 자들에게만 주어지는 영원한 특권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냥 한 번 해보라고 해도 안 합니다. 그들은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신 것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다가 사람들에게 미움을 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아버지라고 부르신 그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에게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특별한 권세를 주셨습니다. 이 권세를 받은 우리가, 아버지 되신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기도가 바로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기도'입니다.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기도에는 하나님을 향한 100%의 신뢰가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도해 봐야 소용없다, 내가 기도한다고 응답이 되겠는가?" 만일 이런 생각을 조금이라도 갖고 있다면, 그는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기도는 커녕, 기도의 자리에도 앉지 않습니다. 기도해 주겠다고 해도 손사래 칩니다.
내 믿음이 나를 치료하고, 내 믿음이 염려를 떠나가게 하고, 내 믿음이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된다는 것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절대로 기도하지 않습니다.
부자 아버지 앞에서 돈 걱정이나 하는 자식은 그 아버지를 초라하게 만드는 어리석은 자식입니다. 목사 앞에서 누가 설교 해야 되느냐고 걱정하는 것은 목사를 초라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자신을 끔찍히도 사랑해주는 연인 앞에서 외롭다고 말한다면 그 사랑을 초라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하물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기도하지 않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이것은 하나님을 초라하게 만드는 죄에 해당됩니다. 그래서 기도하지 않는 성도는, 성도가 아닌 종교인입니다.
(삼상 12:23)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길을 너희에게 가르칠 것인즉
병든 하인을 둔 백부장이 예수님께 치유를 요청합니다. 예수님이 직접 가서 고쳐주겠다고 말씀하시자 백부장은 "말씀만 하시면 내 하인이 나을 것"(마 8:8)이라고” 대답합니다. 백부장은 아무런 의심 없이, 온전히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이스라엘 중에 이만한 믿음을 본 적이 없다”고 칭찬 하셨습니다. 그의 전적인 믿음이 예수님을 감동케 했습니다.
우리는 (1)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케 하는 자녀들이 되어야 합니다. (2)전적인 신뢰를 갖고 기도해야 하며, (3)믿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믿고 감사해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곧 하나님의 말씀을 영화롭게 하는 일입니다. -계속-
Maranatha!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아둘람복음공동체?현명인목사>
홈페이지 : www.adullamch.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