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둘람?복음공동체
Adullam Ministry & Church
현명인목사의 짧은(16초)큐티
[육으로 난 것, 영으로 난 것] ㅡ영상
https://youtu.be/c2-uxNBKqP8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한복음 3:3)
[육으로 난 것, 영으로 난 것]
17세이던 대학 1학년 때, 아버지가 된 아프리카 출신의 어거스틴은 386년의 여름 어느 날, 정원에서 성경 로마서를 읽다가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396년에 쓴 그의 참회록은 모든 사람에게 성자(聖者)로 추앙 받을 때 자기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완전히 발가벗긴 고백이었습니다.
그 고백은 이렇습니다. 어거스틴은 심한 방탕의 생활을 해오다가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별로 변한 게 없었습니다. 이렇게 막 살면 안 된다는 의식은 있었으나 여전히 죄인 그대로인 게 괴로웠습니다. 그런 그에게 로마서 13장 13절과 14절이 가슴 깊이 파고들었습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어거스틴은 이 말씀에 무릎 꿇어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변하였습니다. 방탕한 그가 세계사와 기독교의 역사를 바꾸는 성자 어거스틴으로 다시 태어 난 것입니다.
1515년 11월, 신부 마틴 루터는 카톨릭 신학교 비덴베르크에서 로마서를 강의 하기 시작했습니다. 약 10여 개월을 강의하던 중에 루터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그 때까지의 루터는 로마서에서 <하나님의 의>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불의한 자들을 심판하시는 데 있어서 의로우시다는 식으로 해석하던 터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의 심판의 근거로서의 의로움이 아니라 놀랍게도 그 반대로 우리가 실제로는 불의한 죄인들임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의롭게 여겨 주신다는 것이었습니다.
곧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를 믿기 전에도 죄인이고, 믿은 후에도 죄인 그대로인데, 믿음으로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가 임하여 의롭게 된다는 깨달음이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자신이 새로 태어나는 희열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다시 태어나는 그것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마치 낙원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기분이었다고 그 때를 회고했습니다. 그때부터 성경 전체가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고, 그래서 그는 종교개혁의 기수가 되었습니다.
1783년 5월 24일, 요한 웨슬레가 어느 교회에서 설교를 듣고 있었습니다. 밤 9시 45분쯤이었을 때 마음이 갑작스레 뜨거워지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설교자가 로마서 주석을 읽고 있을때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 십자가가 죄와 사망의 법에서 자신을 구원하신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변화된 요한 웨슬레에 의해 18세기 복음주의 대 각성운동이 영국에서 일어나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나가게 되었습니다.
1918년 8월, 칼바르트 목사가 로마서 주석을 출간했습니다. 그 책을 읽은 카톨릭 신학자 칼 아담 박사가 말했습니다.
'이 책은 신학자들의 운동장에 떨어진 폭탄이다!'
칼바르트, 요한 웨슬레, 마틴 루터, 성 어거스틴의 극적인 변화는 믿음으로 다시 태어난 경험입니다. 기독교는 거듭납의 종교요, 중생의 종교입니다.
사람이 어찌 어머니 뱃속에 다시 들어갔다가 나올 수 있는지 의문시 여기는(요3:4) 그런 육신적 거듭남이 아닌, 믿음으로의 거듭남입니다. 즉 육적인 사람이 영적인 사람으로 태어남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게 합니다. 거듭 태어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습니다(요3:3).
그러므로 지금도 누구든지 예수를 믿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입니다(요3:5-6).
Maranatha!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Adullam Ministry & Church
현명인목사의 짧은(16초)큐티
[육으로 난 것, 영으로 난 것] ㅡ영상
https://youtu.be/c2-uxNBKqP8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한복음 3:3)
[육으로 난 것, 영으로 난 것]
17세이던 대학 1학년 때, 아버지가 된 아프리카 출신의 어거스틴은 386년의 여름 어느 날, 정원에서 성경 로마서를 읽다가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396년에 쓴 그의 참회록은 모든 사람에게 성자(聖者)로 추앙 받을 때 자기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완전히 발가벗긴 고백이었습니다.
그 고백은 이렇습니다. 어거스틴은 심한 방탕의 생활을 해오다가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별로 변한 게 없었습니다. 이렇게 막 살면 안 된다는 의식은 있었으나 여전히 죄인 그대로인 게 괴로웠습니다. 그런 그에게 로마서 13장 13절과 14절이 가슴 깊이 파고들었습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어거스틴은 이 말씀에 무릎 꿇어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변하였습니다. 방탕한 그가 세계사와 기독교의 역사를 바꾸는 성자 어거스틴으로 다시 태어 난 것입니다.
1515년 11월, 신부 마틴 루터는 카톨릭 신학교 비덴베르크에서 로마서를 강의 하기 시작했습니다. 약 10여 개월을 강의하던 중에 루터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그 때까지의 루터는 로마서에서 <하나님의 의>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불의한 자들을 심판하시는 데 있어서 의로우시다는 식으로 해석하던 터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의 심판의 근거로서의 의로움이 아니라 놀랍게도 그 반대로 우리가 실제로는 불의한 죄인들임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의롭게 여겨 주신다는 것이었습니다.
곧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를 믿기 전에도 죄인이고, 믿은 후에도 죄인 그대로인데, 믿음으로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가 임하여 의롭게 된다는 깨달음이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자신이 새로 태어나는 희열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다시 태어나는 그것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마치 낙원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기분이었다고 그 때를 회고했습니다. 그때부터 성경 전체가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고, 그래서 그는 종교개혁의 기수가 되었습니다.
1783년 5월 24일, 요한 웨슬레가 어느 교회에서 설교를 듣고 있었습니다. 밤 9시 45분쯤이었을 때 마음이 갑작스레 뜨거워지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설교자가 로마서 주석을 읽고 있을때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 십자가가 죄와 사망의 법에서 자신을 구원하신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변화된 요한 웨슬레에 의해 18세기 복음주의 대 각성운동이 영국에서 일어나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나가게 되었습니다.
1918년 8월, 칼바르트 목사가 로마서 주석을 출간했습니다. 그 책을 읽은 카톨릭 신학자 칼 아담 박사가 말했습니다.
'이 책은 신학자들의 운동장에 떨어진 폭탄이다!'
칼바르트, 요한 웨슬레, 마틴 루터, 성 어거스틴의 극적인 변화는 믿음으로 다시 태어난 경험입니다. 기독교는 거듭납의 종교요, 중생의 종교입니다.
사람이 어찌 어머니 뱃속에 다시 들어갔다가 나올 수 있는지 의문시 여기는(요3:4) 그런 육신적 거듭남이 아닌, 믿음으로의 거듭남입니다. 즉 육적인 사람이 영적인 사람으로 태어남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게 합니다. 거듭 태어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습니다(요3:3).
그러므로 지금도 누구든지 예수를 믿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입니다(요3:5-6).
Maranatha!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