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에 들어가는 의(義)]-3
“처음에 예수님을 믿는 것도 어려웠는데, 이제는 믿고 나니까 순종까지 하라니, 부모님께도 잘 순종 하지 않던 나였는데 보이지도 않는 하나님께 어떻게 순종 하라는 거냐...?” 누구나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의 의지만으로는 순종 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온전한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 받은 사람에게 주시는 성령을 선물로 받으면 가능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을 모시고 있습니다. 그 증거는 예수님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과, 나의 구세주 되신 사실이 자연적으로 믿어지는 것이고, 성경을 볼 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 들여지는 것입니다. 뜨거운 체험을 한 적이 없어도 그 사람에게는 이미 성령께서 임재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것이 증거가 되어 그로 하여금 순종 하는 삶을 살아가게 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 할 수 있다는 것은,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게 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성령을 모시기 전에는 이 세상의 중심이 자기 자신이었기에 모든 관심의 초점은 자기 만족, 자기 꿈, 자기가 설정한 목표에 맞추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임재하심으로 변화되면 자기 만족이 아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우선시하게 됩니다. 자기의 꿈은 뒷전이고,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하게 되며, 자기가 설정한 목표가 아닌 사람의 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됩니다.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가게 되고, 세상 등지고 십자가 바라보게 되며, 세속의 마당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반석 한 복판에 서게 됩니다. 마음의 근본적인 변화가 생겼기 때문에 행동이 바뀌게 된 것이고, 행동이 바뀌니 그의 삶의 모습과 최종적인 그의 인생 목적지까지도 바뀌게 된 것입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 아래 있게 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순종에서도 최고 수준의 순종은, 다음의 일곱 가지를 긍정적으로 행하게 됩니다.
(1)하나님의 말씀을 늘 묵상하며 큐티를 합니다.
(2)자신이 예배자인 것을 인식하며 살아갑니다.
(3)하나님 면전의식을 갖습니다.
(4)모든 언행심사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행합니다.
(5)믿음에 덕을, 지식을, 절제를, 인내를, 경건을, 형제우애를, 사랑을 더합니다.
(6)사랑의 8가지 양상, 곧 성령의 9가지 열매를 맺습니다.
(7)하나님의 뜻을 따라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고, 쉬지 않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교회 안에는 부정적인 신앙 생활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그들은 죄악이 가득한 세상에서 어떻게 죄를 안 짓고 살 수 있겠냐고 묻습니다.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연약하여 범하는 죄들이니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회개하면 약속하신대로 용서해 주시지 않겠냐고 말합니다.
이들은 얼핏 바른 신앙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실체는 제자리를 빙빙 돌고 있는 다람쥐통 신앙에 불과합니다. 그들은 그렇게 매일 같이 다람쥐통을 탑니다.
이것은 옳지 않습니다. 거룩한 쇠빗장을 꺽고 죄가 들어올 수 있도록 문을 활짝 열어 놓은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들은 범하지 않아도 될 죄들을 하루 종일 습관적으로 범합니다. 그리고 잠자리에 들어갈 때면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 기도를 합니다. 그 다음 날도 또 그 다음 날도 제자리에서 다람쥐 통이 돌아갑니다.
많은 교인들은 이런 다람쥐통 신앙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이것을 정상적인 신앙생활로 봐서는 안 됩니다. 순종하지 않을 때마다 은혜 뒤에 숨고, 죄를 범할 때마다 십자가 뒤에 숨는 것이 능사가 되어 버렸습니다. 순종 할 수 있는 상황 임에도, 죄를 범하지 않을 수 있는 상항임에도 불구하고 그 순간의 유혹과 재미와 짭잘한 유익을 취하기 위하여 신앙적 양심을 사단의 검은 보자기로 덮어 버리는 일을 상습적으로 행합니다. 예수님의 보혈을 자신의 죄를 씻는 도구로만 활용하여 인본적인 마음의 평정을 얻고자 하는 이것을 어찌 기독교 신앙생활의 본질이라고 말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손해를 본다고 해도 얼마든지 순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도 내 안에 임재하신 성령의 도우심으로 사망이 쏘는 죄와 싸워 이길 수 있음을 선포하면서 앞서 말씀드린 긍정적 신앙을 위한 일곱 가지 항목을 지켜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긍정적인 순종이고 올바른 기독교의 신앙의 본질입니다.
요한일서 5장 1-4절의 말씀을 집중해서 읽으시기를 바랍니다(킹제임스흠정역).
“누구든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는 [하나님]에게서 태어났으며, 낳으신 그분을 사랑하는 자마다 그분에게서 난 자도 사랑하느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명령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들을 사랑하는 줄 아나니, 우리가 그분의 명령들을 지키는 것, 이것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니라. 그분의 명령들은 무겁지 아니하니라. 무엇이든 [하나님]에게서 난 것은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곧 우리의 믿음이니라.”
이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성경에는 죄를 지으면 회개하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강조하시는 것은 “너희는 성령의 사람이니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분의 명령들을 지키면 기쁨으로 순종하면서 승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믿음과 순종의 의'입니다. 그래서 참 믿음과 온전한 믿음의 성도는 죄 앞에 번번히 무릎 꿇는 습관적인 패배자의 삶을 살아가지 않습니다.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 7:20). 좋은 믿음의 나무는 좋은 순종의 열매를 맺습니다. 좋은 순종의 열매는 좋은 믿음의 나무에서 열리게 됩니다. “주여 주여 한다고 해서 천국에 다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마 7:21상)” 죄송한 표현이지만 기억에 남으시라고 말씀드리는데, 주둥아리만 나불대는 믿음으로는 절대로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다만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게 됩니다”(마 7:21하).
그래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나은 의는 ‘믿음의 의’요, ‘순종의 의’입니다. 이것은 믿음과 순종 제각각인 둘이 아니라, 50과 50이 만나서 하나가 되는 완전한 '의'입니다.
지금 교회 밖에는 천국을 놓치고 가는 사람들이 거의 전부입니다.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끔찍한 손해를 안고 가는 사람들이 거의 전부입니다. 이들을 내버려 둬서는 안됩니다. 천국 잔치에는 혼자 가는 것 보다 여럿이 함께 가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를 너무나 기뻐하십니다. 그들을 주님 앞으로 인도하여 믿음의 의요, 순종의 의를 갖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영광을 함께 누리게 해야 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예수님의 재림과 심판은 사람이 천국으로 갈 것인가 지옥으로 갈 것인가를 판가름하는, 영원한 운명을 결정짓는 사건이 됩니다.
예수님만 믿으면 그만' 이라는 안이한 생각에서 비롯된 신앙생활은 기독교의 본질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면서 입으로만 떠들어대는 믿음은 천국과 관계 없는 거짓된 믿음입니다. ‘믿음의 의’요, ‘순종의 의’가 만나 하나가 된 믿음이야말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믿음의 의’와 ‘순종의 의'가 하나 된 믿음이기를 바랍니다.
Maranatha!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아둘람복음공동체?현명인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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