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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6:19-26 [당신! 개 만도 못 한 인간인가?]

Adullam 2020. 10. 13. 08:22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그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그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누가복음 16:19-26)

[당신! 개 만도 못 한 인간인가?]

이상(李霜)의 소설 <권태>에 본능인 영역감(領域感)도 영역욕(領域慾)도 없는지 천리나 먼 데서 온 외인 같고, 더구나 안색이 창백하고 기이한 풍모를 지닌 주인공을 보면서도 도무지 짖지 않는 개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마침내 그런 개들을 가리켜 천부의 수위술, 곧 지킴이로 태어난 사명을 망각하고 낮잠이나 퍼질러 자다가 복날 개장국을 끓여 먹기 위하여 촌민의 희생이 된다고 하면서, 불쌍한 개들은 음력도 모르고 복날도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설의식의 <도야지의 대덕>이라는 소설에도 개 이야기가 나옵니다. 영역감과 영역욕을 탐하는 개들은 그 영역을 지키느라 배타적이서 그저 짖어댑니다. 그런가 하면 살점 하나 없는 뼈다귀를 줘도 아양을 떨며 꼬리를 흔들어 댑니다. 그러고 보니 사람이나 개나 뭐 별반 다를 게 없습니다.

유럽의 외로운 노인들에게 있어 애완견은 가장 신장된 권리를 누리는 견권(犬權)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견권이 인권 보다 우위에 있기도 합니다.

개를 부정한 짐승으로 보는 유대인 사회에서, 즉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선택한 백성이 아닌 모든 민족을 개로 취급합니다.

마태복음 15장의 가나안 여인, 마가복음 7장의 수로보니게 여인(그리스계), 누가복음 16장의 호화판 파티를 열며 부를 즐기며 귀족처럼 사는 사람과 극명하게 대비 되는 그 집 앞의 거지 나사로 등 입니다.

특히 나사로는 피부병으로 인해 더러워지고 고통스러운 몸을 치료 받지 못하여 개들이 헌데를 핥아줍니다. 즉 개와 동격인 듯한 추락한 인물로 나옵니다. 그래서 그 부자가 보는 거지 나사로는 '차라리 개만도 못 한 인간일 뿐'입니다.

명의(名醫) 허준은 종기의 고름은, 짜면 무지하게 아프고 고름이 다 나오지 않아 치료가 오래 가며, 빨아주면 아프지도 않고 깨끗이 나와 치료가 급속하다고 썼습니다.

우리의 관심은 그 부자와 거지 나사로 중 과연 누가 사람이고 누가 개이거나, 또는 누가 개만도 못한 가에 있습니다. 육신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그 부자야말로 사람답게 산다고 평가 될 터이나, 100년도 못 사는 그 육신은 호화파티로 흥분된 그 밤에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로부터 새롭게 시작되는 영생하는 세계에서의 그 부자는 차라리 개로 태어남만 못한 경우가 됩니다. 부자는 지옥에서 물 한 방울을 구걸하는 최악의 고통을 겪게 되는데, 개만도 못한 취급을 받던 거지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안식합니다. 이는 최고의 영광, 최고의 품위, 최고의 행복을 의미합니다.

어떤 사람이 사람답고, 어떤 사람이 개이거나 개만도 못할까요? 생각 해 볼 문제입니다.

당신은 성경적인 사람답게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개처럼 살고 있거나 개 만도 못 하게 살고 있습니까?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는 지금 당신을 향하고 있습니다.

나무 상자 빈틈으로 뱀이 들어왔습니다. 그 상자의 뚤린 구멍에 무심코 손을 넣을 수는 있지만 들여다 본 뒤에 손을 넣을 사람은 없습니다.

죽음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구멍이 있습니다. 그 구멍을 들여다 본 사람은 죽음을 생각하며 죽음 뒤에 있을 일을 준비합니다. 그러나 죽음의 구멍을 들여다 본적이 없는 사람은 죽으면 다 끝이라고 말합니다. 정말 죽으면 다 끝나는 것일까요? 정답은, '아니다!!!' 입니다.

그렇다면 그 뒷편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구멍은 어디에 있을까요? 주소는 <누가복음 16:19-‬26>입니다.

죽음이 무엇일까요? 죽음은 피조물이 창조주 하나님께로 불려 들어가는 문입니다. 혹시 아직도 그 문으로 들어갈 준비가 안 돼 있다면, 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속히 준비 해야 합니다. 세상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습니다. 당신의 끝이 문 앞에 이르렀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사도행전 16:31>


Maranatha!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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